HOME                로그인

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복음을 살기 VS 복음적인 정신으로 살기


글 허진혁 바오로 신부|교구사회복지국 차장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궁전 개조해 노숙자 쉼터로 제공” 지난 2020년 2월 3일 연합뉴스에 실린 소식입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바로 옆에 있는 궁전(팔라초 밀리오리 : Palazzo Migliori)이 노숙자 쉼터로 변신했다는 깜짝 뉴스였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난 70년간 어느 여성 수도회가 어린 미혼모들을 돕기 위한 건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도회 사정으로 본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서 건물의 용도 변경을 계획하던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지시로 그렇게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9년 전, 교회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신 교황님이 실제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사셨던 그 복음적 가난의 모범을 그대로 실천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건물 축복식에서 교황님께서는 “아름다움이 치유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노숙인을 위해 숙소를 제공하긴 하는데 허름한 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선심 쓰듯 ‘길거리보다는 낫지 않은가’라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 자리에 오셨다면 그분께 내어 드렸을 법한 최고로 아름다운 숙소를 노숙인에게 제공하신 겁니다. 그분들을 진짜 예수님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했을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멋진 교황님의 선택에 열렬히 박수를 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동만 하고 박수만 치지 말고 우리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복음이 요청하는 파격적 선택 대신 ‘복음적인 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다소 완화된 차선을 택하지는 않는지… 복음은 단순한 이상일 뿐이고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은 실제 교회 공동체가 살아냈던 말씀’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는 올해 초부터 교구 사회복지국장 신부님을 따라 교구 내 여러 사회복지 시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시설이 많아 매주 방문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 다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곳은 교구에서 직접 운영하는 ‘성프란치스코자활쉼터(관장 : 이관홍 바오로 신부)’입니다. 대구 시내 한복판, 중구 가톨릭근로자회관 3층에 자리한 이곳은 교구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을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지하 경당에서 페루 출신 노동자들을 위한 스페인어 미사를 봉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선교를 다녀온 신부님들 중에서 주일 미사가 가능한 분들이 한 주씩 번갈아 가며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베트남, 필리핀 등 각 나라 이주민들을 위한 주일 미사도 봉헌되고 있습니다.

1층 사무실에는 이주민들을 위한 상담센터가 있고, 3층에는 노숙인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그들을 위한 숙소가 있습니다. 그동안 지하 경당과 1층 사무실에는 자주 들렀어도 노숙인 쉼터가 있는 3층을 실제로 방문한 적은 처음이었는데요, 50년의 세월이 주는 무게만큼이나 빛바랜 건물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숙소 내부를 살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게 오래되고 좁은 옛날 숙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지금까지 이대로 두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 일대 전체가 근대문화거리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신축이나 구조 변경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장 신부님은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하시며 이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카리타스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구 카리타스 사회복지법인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작년에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카리타스 가치 1위로 꼽힌 것이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일 년에 두 번씩 전 직원을 대상으로 카리타스 심화교육을 실시하기로 했고, 지난 6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를 주제로 강의와 나눔을 실시했습니다.(유튜브 ‘카리타스 TV’ 참조)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들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우리는 가장 소외된 곳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는가?’ 등등 심도 깊은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교육 과정을 통해 저 역시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신부인 나도 아직 카리타스적인 가치관이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태도와 취미, 습관까지 카리타스적(아가페, 복음적 사랑)이어야 하건만 아직도 나는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복음화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우리를 복음화 한다.’는 말이 있을까요?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살아가려고 다함께 노력할 때 이 세상은 더이상 전쟁과 폭력, 범죄와 같은 소식이 아니라 로마에서 들려온 소식처럼 참으로 놀랍고 따뜻한 소식들로 가득해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