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동(動) 하다
수영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수성성당 보좌

달리기를 더는 할 수 없는 발바닥 상태가 되어버렸다. 조금씩 걷고 있지만 늘어나는 몸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운동이었다.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공부 머리나 운동 신경이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내가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수영이었다. 그리고 사실 무거운 무게를 짊어지는 그런 운동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초라한 내 근력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도 해서 매일 아침 수영장에 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막 하루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의 수영장을 좋아한다. 수영장의 유리를 뚫고 물속까지 들어오는 햇빛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숨을 꾹 참고 잠영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영이 끝난 후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원 시절, 논문과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수영장에 가곤 했다. 해결되지 않는 논문 진도와 복잡했던 본당 생활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수영장이었다. 1미터 남짓한 물속에선 오로지 내 숨소리와 손짓과 발짓의 소리만이 들렸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복잡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했었다.

 

춥다고 할 수 없는 가을 아침의 수영장에서 몸풀기를 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들어간 물속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마주했다. 수영장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을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고요한 물속에서 들려오는 내 숨소리와 내 몸의 소리를 마주했다. 예전의 빠르고 힘찬 소리만큼은 아니지만, 비대해진 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너무나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본당 사목에 관해서, 내 개인에 관해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휩쓸려가곤 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어떤 사람일까?’ 라는 질문에 빠지곤 했다. ‘좋다.’ 와 ‘싫다.’, 그리고 ‘잘했다.’와 ‘못했다.’로 나누어지는 타인의 평가에 비추어 나를 몰두 했을 뿐 나를 듣고 바라보는 일에는 소홀했었다.

 

고요한 물속에서 물을 잡는다. 물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을 잡는 내 팔을 따라 물방울들이 솟아오르고, 내 팔과 몸을 스쳐 지나간다. 물방울의 촉감은 또다시 팔을 젓게 한다. 물방울의 모습에서 팔을 저어 나가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리저리 무엇을 해보려고 했던 지난 시간을 생각한다. 나의 몸과 마음이 일으킨 수많은 물방울의 잔향이 내 몸 곳곳에 서려 있었다. 서려진 물방울들로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살게 되리라.

 

25미터의 수영장 레인을 수없이 왔다갔다하며 문득 올 한 해라는 한정된 시간과 장소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추위와 더위를 느낄 수 있는 나 자신과 그런 나를 옆에서 바라보며 걱정해 준 수많은 사람에게 그렇고 그런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어졌다.

 

올 한 해 우리 각자가 만들어 낸 삶의 수많은 물방울은 또 다른 물방울을 만들어 낼 의미 있는 물방울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없었다고, 비록 지금 여기에선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몸짓과 생각은 큰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2022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반복된 하루를 살아 낸 우리 모두 애썼습니다. 혹여나 이 시간이 괴롭고 힘들 우리도 충분히 애썼고, 우리에겐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없었으니 참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