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구카리타스 시설장 연수 강의 내용 중에서
최근 교회 내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노달리타스’였다. ‘함께 걸어가는 길’을 의미하는 이 말은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로서 교회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특정한 집단이나 특정한 사람들의 독자적인 결정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며, 교회 공동체는 서로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함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런 전체 교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대구카리타스 역시 작년에 이어 다가오는 2023년에도 “다리놓는 사람들”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2023년은 10주년 교구 장기사목계획 가운데 ‘친교의 해’가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사실 시노달리타스는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 정신이기도 하다. 서로 간의 차이점에서 발생하는 의견 대립은 대개 조직 내 갈등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목되는 경향이 있지만 근래에 와서는 서로가 가진 차이점과 강점을 확인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집단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인으로도 주목받는 상황이다. 즉 빅데이터 시대에는 성공에 관한 데이터뿐만 아니라 대립과 갈등을 통해 얻게 된 실패에 관한 데이터도 똑같이 소중하다. 이는 갈등과 실패도 용납하는 도전적이고 유연한 조직일수록 보다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하고, 갈등과 대립에서 얻게 된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점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하지만 현실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목소리가 크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의 의사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문성을 요하는 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한 사람의 경험과 경륜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직급이 높다고 해서 모든 분야의 일에서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판단력이 언제나 가장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포지티브 컨플릭트(Positive Conflict, 긍정적인 갈등)」이란 책을 쓴 경영과 리더십 컨설팅사의 대표인 다비 체키츠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과제를 그룹의 구성원들이 각자 개인적으로 해결하게 했을 때보다 작은 그룹별로 사람들을 묶어 공동으로 작업을 수행하게 했을 때 성공 확률이 월등히 높았다. 비록 의견이 수합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해도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이 융합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집단 지성에도 함정은 존재한다. 해법을 알고 있는 개인이나 소수의 의견이 집단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다수의 여론에 매몰되는 ‘집단 사고’의 함정이다. 분명 개인플레이보다 공동체의 협력이 더 나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겠지만 자칫 갈등을 피하려는 명목으로 해법을 알고 있는 이들이 침묵하거나 해법이 집단에 의해 묵살된다면 그 단체는 실패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더 큰 성공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단 사고의 함정을 피하면서 집단 지성의 강점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리더의 태도
우선 집단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안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제시가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개방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리더는 특정 의견에 지나친 선호나 기대를 표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비언어적 태도 역시 주의해야 한다. 집단의사결정을 진행할 때 리더가 보다 더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때 더욱 자유로운 의견들이 오고 가기 때문이다.
둘째: 악마의 변호인
찬반 그룹 만들기. 즉 반대 의견을 내놓는 그룹을 공식적으로 지정하는 방법인데 가톨릭교회의 시복시성 심사 때도 사용되는 제도다.(신앙 총촉구관) 여론에 이끌려 다수의 의견에 쉽게 동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냄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나 혼자만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집단 구성원들에게 인식시킴으로써 보다 다양한 의견을 용기있게 제안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셋째: 말보다는 글
미국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말이 아닌 글로 썼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을 밝힐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은 집단 전체의 여론에 공개적으로 맞서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의견이 대립되고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 말로 하는 공개적인 회의보다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하게 하는 방법 또한 좋은 대안이 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서 기술적이고 환경적인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새롭게 변화된 환경 안에서 본질적인 미션을 잘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업무적인 결정을 내리는 공식적인 회의뿐만 아니라 동료간 혹은 기관간의 통상적으로 행하는 소통 안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서로 묻고 답해야 한다. 이 일이, 이 방식이 과연 카리타스적인가? 즉 모든 것에 앞서 사람이 우선시되고 또 사랑이 우선시되고 있는가? 좋은 리더는 ‘무엇을(what)’ 해야 할지 알려주고, 뛰어난 리더는 ‘어떻게(how)’ 해야 할지 알려준다면 위대한 리더는 ‘왜(why)’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따라서 카리타스의 리더는 ‘사람과 사랑이 함께’하는 카리타스를 몸소 실현할 뿐만 아니라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동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신입직원의 용기있는 행동과 소신있는 의견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다수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불편함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늘 카리타스적 사람과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랑으로 함께합니다”는 2022년부터 새롭게 선포된 대구카리타스의 미션입니다.
* 이번 호로 “사회복지의 현장에서”는 끝맺습니다. 그동안 연재해 주신 허진혁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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