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內敎友, 平安? (주 내이 지아오요우, 핑안?) 주님 안에 계신 교우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저는 타이완(合薦) 타이중(合中)교구에서 현지인 사목을 하고 있는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입니다. 갑자기 중국어로 인사드려서 당황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보통 우리가 “찬미예수님! ”으로 인사를 하듯이 타이완 교우들은 교회 안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시작할 때 이처럼 인사합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중국어지만 인사라도 이렇게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대주교님과 보좌 주교님, 그리고 교구 내 신부님들과 교우 여러분, 다들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달력을 한 장씩 앞으로 되넘겨 보고 있습니다. 차근차근 시간을 되짚어 보니 이곳에 온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타이완에 온 것이 마치 어제 일인 것만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이만큼 지나갔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이 지금 한순간에 몰려와 무심코 살아온 제 마음에 뭔가 무거운 물건을 하나 던져 놓고 얄밉게 떠나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려니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 기억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일이 없는 것 같아 글을 써 내려가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이야기, 성찰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기억을 불러 모아 그동안 지내온 삶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저는 2018년 9월 3일에 이곳 타이완에 왔습니다. 포르모사(Formosa), 곧 아름다운 섬이라는 별명을 가진 타이완은 한국에서 남서쪽으로 15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중국 푸젠성(福建省)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으며, 경상도와 비슷한 영토 면적을 가진 고구마 모양의 섬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 4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타이완입니다. (비록 국제적으로 타이완은 나라가 아니지만 여기서 만큼은 나라로 부르겠습니다.) 저는 처음에 타이완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심지어 타이완과 타일랜드(태국)가 같은 나라라고 생각할 정도로 현지에 대한 정보가 무지했습니다. 핑계같지만 사실 영문으로 두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비슷하게 들리긴 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출국을 준비하는 동안 6개월 정도 중국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침 제 중국어 선생님의 고향이 타이완이라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나라 명칭에 대한 무지함도 덤으로 해결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있는 곳을 향해 좀더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많은 분이 타이완이라 하면 자연스레 타이베이를 떠올릴 것입니다. 물론 그곳이 타이완의 수도이며 관광객들이 주로 여행하는 도시이기에 타이완-타이베이라고 자연스레 연상될 것입니다. 그러나 타이완은 서쪽으로 크게 '타이베이(合北), 타오위안(桃園), 신베이(新北), 타이중(合中), 가오슝(高雄), 타이난(合南)’과 같이 여섯 개의 직할시가 있습니다. 또 동쪽은 산악지대로 원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며 대표적으로 ‘이란(宣菌), 화렌(花達), 타이동(合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제가 착륙한 곳은 타이중, 그중에서도 칭수이구(淸水區)입니다. 칭수이는 타이중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지역입니다. 잠시 지역의 전경을 구경해 볼까요? 저 멀리 짙은 푸른색의 타이완 해협이 보이네요. 그리고 풍력발전기가 해안선을 따라 아주 예쁘게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선박들이 드나들고 있네요. 좀더 내륙 쪽으로 들어와 볼까요?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내륙 쪽은 상당 부분 농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칭수이는 어업과 농업 등이 함께 자리 잡은 곳입니다. 저기 제가 내려야 할 공항도 보이네요. 그럼 이제 착륙해 볼까요?


공항에 내려보니 많은 분이 저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6개월 먼저 와 계신 곽재경(루카) 신부님, 서울대교구의 김동원(베드로) 신부님, 두 분의 예수성심 시녀회 수녀님, 그리고 교구청 비서와 함께 타이중교구 교구장 수야오원(蘇繼文) 주교님이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특히 주교님은 저를 안아 주시며 타이중에 온 것을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환영해 주시던 분들과 함께 현재 제가 지내고 있는 칭수이 천주당(Our Lady of China Catholic Church)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본당은 70년의 역사가 깃든 성당으로 오래된 만큼 사목을 하셨던 신부님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5대 본당 신부라는 것은 그만큼 거쳐 가신 신부님들이 많지 않으며 한 분당 평균 15년 이상 머무셨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한 본당에 3년에서 5년 정도 머무는 것으로 알고 있던 저에게 이곳의 상황이 조금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 가시기도 전에 놀랄 만한 사실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당시 저를 맞이해 주셨던 전임 본당신부님입니다.
지금은 하느님 품 안에 쉬고 계실 전임 본당신부님은 메리놀수도회 소속의 미국인으로 당시 연세가 무려 아흔을 바라보고 있었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본당에서 40년 가까이 사목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신부님의 국적이 미국일 뿐만 아니라 타이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사목하신 결과, 정부도 그 공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이런 분이 “환잉 라이 타이완!(歡迎來合騰, 대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이라며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지금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 본당신부님이 저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의 인사는 그저 예의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세월의 깊이와 그 삶의 무게가 담겨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말하자면 그분의 사목이 곧 본당의 역사이고, 본당의 역사가 곧 그분의 사목이라는 인상을 남겨준 것이 바로 여기 칭수이천주당입니다.
 
본당에 대한 저의 인상이 이처럼 놀라운 만큼 본당 신자들도 저에 대한 인상이 남달랐나 봅니다. 최근에 신자 몇 분과 식사를 하며 그때 저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한국에서 신부님 한 분이 중국어를 배우러 오는 정도로만 알고, 거처하게 될 방을 정리하며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일 본당에서 저를 맞이할 때 너무나도 젊은 청년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사실 대만 교우 분들에게 있어 신부님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새로 온 저를 맞이하면서 건네는 인사가 “쩌머 니엔칭!”(道歷年輕, 많이 젊으시군요!)일 정도로 타이중에는 제 나이 또래의 젊은 신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서로가 받은 이 첫인상과 많은 분이 마중 나와 주시고, 특히 주교님이 그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심을 통해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이번 달 저의 이야기는 타이완 첫 입국으로 여백을 채워보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제 막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까 하는데 벌써 글을 마무리하라고 얼마 남지 않은 여백이 저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번 달 이야기를 시작으로 당분간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글재주로 써 가는 이야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이번 달은 여기까지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 인사를 중국어로 했으니 마무리 인사도 중국어로 해 볼까요? 願天主保佑?!(위엔 티엔주 바오요우닌!)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호하고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되는 ‘타이완에서 온 편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재 타이중교구에서 선교사목 중인 강우중(베르나르도) 신부님은 2016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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