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입니다. 당시 초나라의 재상이던 소해훌(昭奚恤)의 위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그를 두려워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선왕이 신하들에게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강을(江乙)이란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에 불과한 소해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하늘의 사자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니 천벌을 받을 것이다.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앞장설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의 뒤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짐승들이 쩔쩔매며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사실 짐승들이 달아난 것은 여우 뒤에 따라오는 호랑이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초나라의 힘, 곧 임금님의 강한 군사력입니다.”1)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호가호위(狐假虎威)’입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힘을 빌린다는 뜻으로, 남의 힘을 빌려 쓰면서 자신의 힘인 양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잘 살펴보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여우처럼 그것이 자신의 힘인 양, 자기 능력인 양 착각하고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국민이 국가와 모든 권력의 주인이라는 정치 체제입니다. 그러니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지방 자치 단체장들이 정치를 맡아 하는 것이지요. 정치인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권력을 쥐었다고 착각하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며 부정부패를 저지른다면 호가호위하는 여우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밖에요.
사제로 살아가면서 자주 되새깁니다. 신자들이 사제를 보고 존경을 표하며 인사를 하고, 영적 아버지로 여기며 따르는 것은 그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유혹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스며듭니다. 내 능력 때문에 부르심을 받았고, 내 힘으로 사제가 되었으며, 내가 강론을 잘하고 사목을 잘해서 신자들이 나를 따르고 존경을 표시한다고 여깁니다. 사제인 나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나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기며 기분 나빠하기도 합니다. 사실 내가 받은 모든 것, 나의 생명마저도 하느님에게서 그저 받은 것인데 말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이번 달에는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파스카 성삼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수난과 죽음, 부활도 모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영광에 참여하며 기뻐하면서도 사실 내가 이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의 도구로서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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