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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動) 하다
겨울 지나고 봄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영천성당보좌

새 본당에 온 후, 전임 보좌신부가 인수인계를 위해 전화를 해 왔다.

 

본당의 현황과 지난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자들을 향한 전임 보좌신부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형님, 공소에 미사 집전하러 가면 진짜 좋습니다. 근데 좀 바쁘실 겁니다. 그래도 일을 하러 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쉬러 간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매 주일 아침 여덟 시 반, 나는 고경공소로 향한다. 공소로 가는 길은 참 고요하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도로 곳곳의 공백이 스쳐지나간다.

 

고요와 공백을 건너 공소에 도착한다.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하는 미사를 집전하러 왔다는 이유만으로 공소 신자분들은 “신부님 오십니다.” 라며 과분한 환대를 해 주신다.

 

손자뻘 되는 신부를 향한 과분한 마음은 단순히 사제에 대한 마음만이 아니라 손자를 바라보는 그런 마음이리라.

 

일월의 마지막 주일, 유달리 안개가 가득했던 추운 아침이었다. 자욱한 안갯길을 뚫고 도착한 공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공소 일을 도맡아 하시는 회장님과 형제님들은 분주히 움직이셨고, 추운 공소 건물 안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어 곧바로 미사를 집전했다.

 

“춥지예?”라는 말에 신자 분들은 웃음을 터트리셨다. 입김이 절로 나왔던 그날 미사는 참 따뜻했다.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인데 마이크마저 되지 않으니 예쁘게 봐 달라는 변명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신자 분들의 마음과 얼른 전기를 고치려 애를 쓰는 회장님과 형제님들의 발걸음은 불편함이 아니라 또 다른 추억이 되었다. 미사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전기가 들어왔다. 함께 박수를 치며 웃음을 나눴던 그 시간이 짧은 사제 생활 가운데에서 특별하진 않지만 강렬한 기억이 되었다.

 

“가지 마시소.” 할머니 한 분이 문 앞을 막아서시며 장난을 치셨다. “지금 안 가면 밥도 차려 주십니까?”라고 능글맞게 대답을 하자 “밥 뿐만일까? 재워도 주꾸마.”라며 “이래 매주마다 와서 좋다.”고 손을 꼭 잡아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 풍경은 ‘김관호’라는 사람에게서 절대로 떠올릴 수 없는 모습이었다. ‘찐맛 없다. 차갑다. 벽이 느껴진다.’라는 말만 듣고 살아온 나에게도 다른 모습이 있음을 느낀다.

 

“쉬러 간다.”는 전임 보좌신부의 말이 무엇인지 점점 더 알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도 참 필요하지만 아무런 사심 없이 마주하게 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주는 큰 힘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신자들이라는 큰 덩어리가 아닌 ‘신자 한 분’이라는 작은 덩어리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의미가 정말 거대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절대로 없다. 당연함은 그때에 있어야 할 자리에, 나를 버린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수고가 모인 결과다.

 

‘한 사람’이 아니라 당연함이 벌어지는 그 자체를 바라 보기에 서로를 향한 이 당연함을 우리는 너무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내 삶에 당연함이 되어 준 모든 마음과 수고에, 고마움에 익숙해지지 않길 바란다.

 

‘동하다’를 시작한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족한 글을 참고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짧게나마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당연함에 대한 올바른 태도 같다.

 

“이 글의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맥락없고 엉망진창인 젊은 신부의 투정 가득한 글을 인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