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마리 피로(Jean-Ma-rie Pirot, 1926~2018)는 아르카바스(Arcabas)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프랑스의 현대 성 미술가로 그림, 도자기, 프레스코,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판화, 모자이크 등 3천여 점의 작품을 남긴 다작의 예술가로 유명하다.
아르카바스는 매일 읽는 성경 안에서 영감을 얻었다. 형상화와 추상화 사이에 그려진 그의 그림에는 현대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유쾌한 감각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강렬한 색채와 빛나는 금박을 사용했으며 활기차고 축제의 분위기를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26년 12월 26일 프랑스 트레머리에서 독일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7세에 독일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파리에서 탈영하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고, 1950년 그르노블 미술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결혼한 그는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캐나다 국립 예술위원회의 초청으로 오타와대학 교수로 재직한 후 프랑스로 돌아와 그르노블 사회과학대학에서 시각예술 아틀리에 ‘손의 예찬’을 설립했다.
성 위그 샤르트뢰즈 성당에서 신념과 일치하는 작품을 하게 된 그는 25세 때인 1953년부터 1971년까지 성당 벽화, 조각, 십자가, 미사용품, 스테인드글라스 등 성당의 모든 부분을 111개 작품으로 채워 기념비적인 걸작을 남겼다. 1984년 아르카바스는 이 작품을 프랑스 이제르주에 기증했고 후에 종교미술 박물관이 되었다. 매년 4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사랑받고 있는 이곳에서 그는 마지막 생을 보냈다.
아르카바스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이탈리아 토레 데 로베리의 부활 성당에 그린 시리즈 ‘엠마오의 순례자’를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걷는 낯선 사람은 여행 동반자가 된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낙담하여 모든 것이 균형을 잃고 단절되어 그 낯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분은 제자들 안에 있는 말씀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시고 제자들은 신비로운 빛에 둘러싸인 그분께 매혹되어 더 멀리 가려는 그분을 자신들의 생활 안으로 점점 깊이 환대하며 초대한다. 저녁 식사의 친밀감 속에서 조금씩 변화되어 가던 제자들은 마침내 빵을 떼어 나눌 때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제자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되돌아간다.

엠마오의 이야기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찬찬히 일깨워 주는 듯하다. 오늘날 당신께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웃과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는 관심받지 못하고 외면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매 순간 함께 걷고 있는 그분을 우리는 세상 근심 걱정으로 눈이 가려 사랑할 기회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되돌아가는 제자들의 뒤를 따라 우리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다시 길을 나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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