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 후원 단체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 여행을 오고 싶다고 했다. 대구 토박이지만 관광지나 볼거리 등을 잘 몰랐고,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여행을 온다는 사실에 굉장히 난감한 상태였다. 대구시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각종 SNS를 검색하며 멀리서 오는 친구들에게 안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먹거리, 볼거리 등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다른 지역에서 대구로 여행을 오는 많은 사람들이 주교좌 계산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역사에 대해 나누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 오래 되었고 건물이 예쁘니까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 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친구들의 여행 일정에 계산성당을 넣어 보았다.
친구들이 오는 날이 다가왔다. 아동 후원 단체에서 만났으니 대구에 그와 관련된 다른 활동이 있는지 찾아보는 와중에 우연히 계산성당에 들리게 되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날의 행사 혹은 시내에서 급하게 주일미사를 드려야 할 때 가는 이곳을 가톨릭 신자가 아닌 친구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갑자기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관광 안내문과 역사관이 있었고 나는 처음으로 안내문을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당이 다 같은 성당이지. 뭐가 다르겠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대구대교구에 많은 성당들이 생기고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중심에는 계산성당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남권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 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명동성당이랑 비슷하게 생겼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명동성당과 계산성당을 설계한 분이 같은 신부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어 더욱더 흥미가 생겼다. 역사관에는 영상관, 김수환 추기경 유물관, 성당 가계도, 성당 역사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가계도였다. ‘성당에 가계도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가계도를 보면 대구대교구에 속한 성당들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 동네에 살고 있으니 저 성당을 다니는구나.’가 아닌 이 동네에서는 이 성당이 처음 생겨났고, 새로운 동네가 생기면서 이 성당과 저 성당이 나눠진 과정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신기했다. 성당에 오래 다니신 어른들이 다른 본당 신자와도 친하게 지내는 이유를,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사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저녁미사 시간이었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뿌리를 알게 된 것 같아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평일미사에 참례했고 그 과정에서 성당 안 스테인드글라스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에는 그저 ‘오래되고 역사가 깊은 성당이니 이런 것도 멋있다.’가 전부였다면 역사를 알고 뿌리를 알게 되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궁금했다. 더불어 이 역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자료를 찾아보았다. 성당 제단 뒤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100년 전 프랑스에서 제작됐으며 신자석 기준의 옆쪽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1990년대에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이때 한국 순교자들과 4대 복음사가가 추가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직도 밝은 빛을 내며 성당을 비춰 주는 것도, 모든 장식에 깊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자료를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알게 되어 즐겁고 신기했다. 더불어 역사 깊은 이곳에 한국 성인도 함께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마침내 친구들이 왔다. 대구의 여름을 즐기며 맛있는 것도 먹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드디어 “여기 앞에 굉장히 큰 성당이 있어. 예쁘거든. 보러 가자!”라고 용기를 내 친구들을 이끌고 계산성당으로 갔다. 평소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 한 명은 계산성당을 와보고 싶었다며 본인 직장 앞에 있는 명동성당을 이야기하며 천주교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용기를 얻어 계산성당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이 오기 전 계산성당에 대해 공부했던 지식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주변에 신자들은 많지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나로 인해 신앙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혹시나 오해와 편견이 생길까봐 선교라든가 신앙을 권하는 행위 혹은 소개조차도 조심하고 있었다. 종교가 다르고 신앙이 다르더라도 계산성당은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기에 친구들도 굉장히 흥미있게 듣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친구가 미사를 드리고 가도 되냐는 말을 먼저 해왔다. 친구들을 보내고 혼자 주일미사에 참여하려 했는데 신자가 아니더라도 미사를 볼 수 있냐는 친구의 질문에 흔쾌히 미사를 함께 드리게 됐다. 친구는 처음 접해보는 미사 시간이 많이 지루하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들이 힘들었다고 했지만 이 역사적인 곳에서 함께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 대구에 와서 큰 걸 남기고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미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누가 봐도 신자가 아닌 두 명이 멀뚱하게 미사 시간 동안 있었으니 본당 수녀님께서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건네주셨다. 덕분에 설명할 수 없었던 이야기나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옆의 성인이 누구이며 왜 성인이 책, 창, 펜 등을 가지고 있는지, 한복을 입은 순교자들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이유 등 인터넷으로 찾기 힘들었던 정보를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했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장소에서 나와 친구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추억도 이 역사 속 하나에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성당’은 봉사하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장소였으며, 친구들이 있고 관심을 주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계시고 늘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다. 이처럼 성당은 많은 추억을 주며 공간 자체가 나에게는 삶의 일부로 느껴졌다. 그런 장소가 멀리 차를 타고 가거나 특별하게 찾아가야 하는 장소가 아닌 출퇴근길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성지라는 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대구에 사는 가톨릭 신자라면 쉽게 방문할 수 있고, 언제든 시간이 되면 미사까지도 참례할 수 있는 계산성당, 주일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특별한 성월이나 주일이면 1년에 한 번은 꼭 갔던 계산성당, 집 앞의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갈 시간이 촉박할 때 주일 밤 9시 30분에 마지막 미사가 있다는 이점으로 엄마에게 “나 주일을 지켰어!”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계산성당, 타지 사람들이 여행을 오면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안내할 수 있는 역사적인 계산성당, 언제나 접할 수 있다는 이점으로 귀하게 생각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많은 역사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 나는 오늘도 미사를 드리러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