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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청년청소년 해외봉사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많았던 필리핀에서의 9박 10일


글 정은비 에스텔|경북대학교 가톨릭학생회 ‘빨마’

지난 1월 30일(월)부터 2월 8일(수)까지 9박 10일간 청년청소년국 주최로 필리핀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몇 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짧게나마 나눠보려 합니다.

성탄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선물처럼 제게 봉사활동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몇 번의 사전 모임을 통해 준비를 마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출국일이 다가왔습니다. 성모당에서 출발해 김해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고 4시간의 비행 끝에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습한 공기와 야자수가 서 있는 풍경을 보니 필리핀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이후 두 시간 가량 더 이동하여 따가이따이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긴 이동 시간에 지쳐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날, 우리 일정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그리스도 수도회에 방문하여 현지 신부님과 수사님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짧은 몇 마디를 나누고, 함께 근처 판자촌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며 가장 먼저 뛰어나와 낯선 이들의 방문을 반겨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상상한 것보다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은커녕 상수도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허름한 집이 대다수였습니다. 나무줄기 몇 개로 짜인 2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서 8명의 식구가 살고 있는 것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너무나도 해맑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몇 명은 저희에게 다가와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앞 원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의 집에 비하면 제가 사는 곳은 화장실이며, 부엌이며, 베란다까지 부족할 게 없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한편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튿날 오후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두 번째 장소인 파인애플 마을에 갔습니다. 전날 방문했던 판자촌과 다를 바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허름한 집들이 즐비해 있고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 해가 지니 금방 어둠이 덮쳤습니다. 식사 시간에 맞춰 음식을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타고 온 지프니(필리핀에서 지프를 개조한 택시를 이르는 말)에 올라가 먹기 시작했습니다. 옆 친구와 아옹다옹하며 닭다리 하나를 나눠 먹는 모습에서 이곳이 온정으로 가득하고 따뜻한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이 메말라 가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을 마주칠 때마다 배시시 웃어주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며칠이 지나고 토요일, 저희가 준비한 신앙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수도원은 아침부터 아이들로 북적거렸고 지프니가 끊임없이 주변 마을을 돌며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판자촌과 파인애플 마을,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를 기억해 주는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점심에는 서툰 솜씨로 만든 카레를 주민들께 나눠드렸습니다. 몇몇 엄마는 아이들만 식당으로 보내고 자신들은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가 봅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프로필 만들기를 시작으로 신앙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전 모임을 하며 열심히 준비한 만큼 아이들이 즐거워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손수 꾸밀 수 있게 색연필과 사인펜을 준비해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디흔한 색연필을 이날 누군가는 처음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작은 색연필 하나에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한 번 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던 저를 말입니다. 아이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걸 보니 왜 더 가져오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야외에서는 다양한 미니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코끼리코에 휘청거리는 아이, 넘어져도 부끄러워하거나 울기는커녕 마냥 신나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순수해 보였습니다. 그날 아이들이 가르쳐 준 ‘마또마또 픽’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들에게 물들어 가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지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했고, 일정을 마무리하며 수도원 신부님의 지도하에 ‘행복’에 대한 짧은 피정을 했습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수도원 입구에서부터 건물 현관까지 걸어오는 미션을 통해 행복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피정 가운데 필리핀에서의 날들을 돌아보았습니다. 행복은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거창한 것들이나 돈과 명예에서만 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비롯해 주변의 들꽃과 새소리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봉사하러 갔지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던 시간이 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더 도움이 되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힘을 보탤 기회가 주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해 지금 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9박 10일간 저를 이끌어 주신 하느님, 그리고 신부님들, 대학생 봉사자들, 중·고등학생들, 현지 주민들과 아이들, 수도회 신부님과 수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기도로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