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교리
인격 성장과 하느님 닮기


전재현(베네딕도)|신부, 대구대교구청 사목국 청소년담당

마음열기

우리의 눈은 밖으로 나 있습니다. 그래서 눈은 자연히 눈앞에 있는 다른 사람, 다른 것들은 잘 보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은 잘 보지 못합니다. 얼굴에 묻은 것이나 등 뒤에 있는 것은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옷을 살 때, 그것을 입고 거울에 비춰 봅니다. 우리가 가진 눈만으로는 옷 입은 우리 자신을 잘 보고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과 관련될 때, 우리의 눈은 상당히 제한된 능력만을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적인 눈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에게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비판적인 안목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런 눈을 지니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눈처럼 정신적인 눈도 자기 자신에게보다는 밖으로 더 치우쳐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지니는 일종의 육체적·정신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색깔로 알아보는 당신의 성격 & 연애 심리」

7가지 색으로 알 수 있는 당신의 숨겨진 성격 & 연애 심리는? 다음 중 한가지 색을 선택하세요. [초록색]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갈색]

「붕어빵으로 알아보는 당신의 성격은?」

따끈따끈하고 맛있어 보이는 붕어빵이 있습니다. 물론 먹는데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만약 그 붕어빵을 먹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먹겠습니까?

1. 머리부터 먹는다. 2. 꼬리부터 먹는다. 3. 배부터 먹는다. 4. 등지느러미부터 먹는다.

 

언젠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런 종류의 심리테스트를 가지고 재미있게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성향으로 나타날까?’ 하는 호기심에 한동안 귀기울여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심리테스트는 재미가 반 이상 차지한다고 할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감추어진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아 깜짝 놀랄 때도 있습니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이 내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도 타인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타인의 감추어진 속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 사람의 ‘말투’ 하나, ‘습관’ 하나를 관심있게 바라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방법! 그것은 타인의 말투, 습관 등을 관심있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그저 ‘가상현실’에 그치지 않고, 실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인간관계 능력’이 중요한 교육내용으로 다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하기

언젠가 본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욕하는 마음속의 말들에 무척 괴로웠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바람을 먼저 들어줌으로써 수많은 여자들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위나 외모에 기인한 사랑이 아니라, 참으로 마음을 헤아려 줄 줄 아는 사람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플레이보이에게서 배우자!’는 약간은 우스운 제안을 해 봅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 ‘내 이웃이 원하는 것이 뭘까?’를 고민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참으로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 호감이 가는 사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타인의 욕구, 타인의 필요를 서로 깊이 이해하며 살아간다면 그다지 다투고 미워할 일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바로 이렇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계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처럼 자기 중심의, 하나의 관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관점을 동시에 보고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자기 중심을 탈피해서 상대방의 입장, 혹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의 처지에 서서 어떤 대상을 들여다보시고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닮기 위한 노력일 수 있지 않을까요? 성서의 가르침을 살펴 보겠습니다.

 

“남에게 은덕을 베풀어야 풍부해지고 남을 대접해야 저도 대접을 받는다.”(잠언 11, 25)

“하느님 같은 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에게 넘겨 줄 수 없어 남기신 이 적은 무리,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용서해 주시고,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 주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기쁨이야 한결같이 사랑을 베푸시는 일 아니십니까? 그러니 어찌 노여움을 끝내 품고 계시겠습니까?”(미가 7, 18) 

“알아보지도 않고 남을 비난하지 말아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질책하여라. 남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대답하지 말며 남의 얘기를 가로막지도 말아라.”(집회 11, 7-8)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로마 3, 24)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에페 4, 2)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게으른 사람들을 훈계하고 소심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인내로써 대하십시오.”(1데살 5, 14)

“인내력을 한껏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고도 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야고 1, 4)

“그러나 이 자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나 욕을 하고 이성이 없는 짐승들처럼 무엇이든지 본능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맙니다.”(유다 1,10)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타인을 수용하는 일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노력이 됩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않게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물론 아이들은 다투고, 미워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성숙해 가지만, 그런 과정 중에 있는 아이라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 다툼이 과격하고 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한 발자국씩 서로 양보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은 부모에게서부터 제일 먼저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인 나부터 남의 조그마한 잘못을 눈감아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관심있게 지켜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혀 타인을 미워하고, 꾸짖고, 그렇게 해서 생긴 감정적인 거리감을 쉽사리 좁혀나가지 못합니다.

 

물론 언제나 온화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관대한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극복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을 한번 더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환히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을 닮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전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실천하기

인생의 목적은 하느님을 닮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착하고 관대하려고만 애쓰고, 기도하려고만 애써봐야 힘만 들 수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해야 합니다. 한없이 크기도 하고 한없이 작기도 해서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만물 속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먼저 닮으면 착해지지 않을 수 없고, 친절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 타인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내하는 연습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얼마나 인내심을 가지고 귀기울여 듣는지 살펴보세요.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아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어머니는 또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인내심을 저버린 자들은 화를 입으리라.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어떻게 하려느냐?”(집회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