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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맞이하여
부활풍습


편집부

부활초

부활초가 부활 성야 전례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4-8세기 갈리아 지방의 전례부터였다. 새 불에서 부활초를 켜는 예식은 8세기에 시작되었고, 새 불을 축성하는 예식은 12세기 이후에 도입되었다. 그 후 중세에 와서 성지행렬, 부활절 금요일의 십자가경배, 성목요일의 수난 감실과 성체 조배 등과 함께 부활초의 예식도 빛의 상징으로 부활 성야 전례에 정식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그 후로 오랫동안 폐지되었다가 1955년 전례 개혁으로 다시 전례에 도입되었다. 부활초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그 십자가 위에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인 알파(Α), 그리고 아래에는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Ω)가 쓰여져 있으며, 그해의 연수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이요 끝이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내일도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표지이다. 그리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다섯 상처를 기념하기 위한 다섯 개의 상흔이 십자가의 중앙과 끝 부분에 있다.

 

사제는 부활 성야 전례 중에 부활초를 한 번 또는 세 번 물에 담그면서 성세수를 축성한다. 그리고 부활초는 부활시기 동안 부활초 촛대에 계속 세워져 미사와 성무 일도 등 전례가 거행될 때마다 밝혀진다. 이 초는 부활 시기가 성령강림대축일로 끝나므로 이때까지 켜둔다. 그 후 부활초는 적절한 곳에 보관하여 세례식이 있을 때마다 불을 켜, 영세자들의 초에 붙여준다. 이 밖에 장례 미사 중에도 관 근처나 제대 옆에 부활초를 켜 놓는다.

 

부활계란

달걀은 봄이나 풍요의 상징이다. 겉으로 보기엔 달걀이 죽은 것처럼 보이나 그 안에는 겨울 뒤에 숨어 있는 봄처럼 새로운 생명이 계속되고 있다. 중세에서는 사순시기 동안 달걀 먹는 것을 금지하였기에, 신자들은 부활절이 되면 달걀을 주고받았다. 풍요 또는 다산의 상징인 달걀이 지금은 우리 주님께서 새 생명으로 영광스러이 나타나신 돌무덤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부활 달걀의 아름다운 색깔과 그림은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을 보여준다. 부활달걀을 예쁘게 만들어 선물하는 풍습은 17세기 수도원에서 시작되어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졌다. 원래 부활달걀은 붉게 물들였다. 붉은색은 승리의 색으로, 죽음을 이긴 새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후 달걀은 예술적인 묘사로 발전하여 종교적 또는 익살스런 색과 그림의 표현으로도 나타났다. 이러한 부활 달걀은 선물로써 알맞기에 부활 대축일에 축성받아 먹기도 하고, 또는 벗이나 이웃에게 선물한다.

 

부활백합

부활 백합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돈나 백합(흰 백합)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중세 후반기 버뮤다 군도에서 유래한다. 1882년에 화초 재배인이던 해리스(W.K.Harris)가 그 꽃을 미국에 퍼뜨렸는데, 부활시기에 그 꽃이 처음으로 피어 부활 백합으로 불렸다. 미국은 곧 그 의미를 받아들여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교회에서는 그 꽃을 장식용으로 사용했고, 국민들은 부활 예식을 위하여 가정에서 애용했다.

백합은 모양과 형태가 뛰어나게 아름답고, 빛나는 흰색과 청순함과 우아함을 볼 때 확실히 부활 의식의 감동을 더해 주는 좋은 소재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백합은 늘 아름다움과 완전함과 선을 상징하며, 성서에서도 이 꽃을 비유로 흔히 사용하였다.

 

새옷(흰옷)

부활 때에 새옷을 입는 관습은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부터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대부분 성토요일의 부활성야 동안에 성세성사를 받았으며, 이 때에 영세자들은 하느님 앞에 모든 죄에서 씻겨져 순결하고 거룩한 사람들로서, 또 성세성사의 은총의 상징으로써 흰옷을 입고 부활주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 때에 일반 신자들은 흰 옷을 입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사순절 동안 참회와 기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것을 의미하기 위하여 부활 때에 새옷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