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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은퇴사제를 찾아서 / 이상호 베드로 신부
하느님이 내게 준 은총


김선자(수산나) 본지기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길이 주어져 있다. 평생토록 그 길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연 또는 필연에 의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 여기 인생의 항로를 바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평생을 걸어온 분이 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겨울이 물러갔음을 알리는 2월의 마지막 주, 앞산과 도로가 경계한 곳에 자리한 바오로관에서 이상호(베드로, 71세) 신부님을 만나 뵈었다. 은퇴하신 지 이제 3개월 남짓, 이사한 지 얼마 안되어 한쪽 귀퉁이에 이삿짐을 싼 상자들이 보였다.

 

인생의 여정 그리고 사제

신부님은 1931년 11월 27일 상주 함창에서 태어났다. 3대에 걸쳐 내려온 신앙심은 남달랐으나, 처음부터 사제의 길을 걷지는 않으셨다는 신부님. “글쎄, 처음부터 사제가 되려고 한게 아니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싶어 서울에서 교대에 다녔네. 6·25동란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지. 그 곳에서 병에 걸려 죽게 됐는데 나도 모르게 여태껏 살아왔던 인생을 돌아보니 허무하더군.” 그 당시    본당 신부님(신부님이 다니던 성당)의 강론이 신부님의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 들어왔다. 사제의 길, 사제의 생활, 방향에 관한 말씀은 신부님의 인생항로를 360도 회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으로 신학교가 피난왔을때 입학해 신학생이 된 신부님은 징집 1기로 군에 가,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된 1년 후까지 군복무를 하셨다. “그 때 이미 동기들은 복학해 부제가 되어 있었네.” 1963년, 교구 주교님이 편찮으셔서 노기남 주교님에게 사제서품을 받았고, 사제가 된 후에도 유학을 떠나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이 곳에서의 깨달음과 배움이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신부님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퇴하실 때까지 교구본당 사목활동을 해 오신 신부님은 “은퇴하고 나의 삶을 뒤돌아보니 하느님이 나에게 은총을 많이 주셨다는 것을 알았네. 나를 보필했던 11명의 보좌신부님들을 비롯해 좋은 신자들을 많이 만났지.”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비치어졌을 수도 있었을 거라며,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 말씀 안에서 최선을 다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주일이면 경산시 하양에 위치한 동강공소에 미사를 봉헌하러 가신다. 본당에 계실 때는 시간이 없어 책을 보거나 다른 곳에 갈 여유가 없었다고 하시는 신부님. “지금은 안식년이라고 생각하고 당분간은 이것저것 하면서 쉴 계획이라네. 그 후 사회복지에 관한 일들을 하고 싶네. 환자들을 만나 위로를 해준다는 등,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을거라 생각하네.”

 

여전히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신부님은 자신을 비롯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영적인 향기가 풍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생(生), 사(死), 화(火), 복(福)의 말을 들려주신다. 믿음의 근본을 줄 때 비로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찾아 천상적인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치열하게 사는 삶이 바쁠지라도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원치않는 고통을 당할 때 다소 힘이 들지라도 믿음 안에서 생활한다면, 그것이 결코 나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는 현재의 삶을 뒤돌아 보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살펴 반성과 기도로 부족한 것을 채우고, 넘치는 것은 버릴 줄 아는 깨달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