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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지 법인 |SOS 어린이마을 한국본부를 찾아서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우리 아입니다.


김명숙(사비나)|본지 편집실장

때이른 봄 햇살이 어린이마을에 함박 쏟아져 내린다. 집앞 현관마다 야단스럽게 흩어져 있을 꼬맹이들의 신발이 모두 외출하고, 텅 빈 현관은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면 마을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집으로 뛰어들 올텐데, 나는 벌써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다려진다. 학교로 가고 난 오전시간이라 사뭇 조용한 시간에 어린이마을을 찾았다.

새롭게 단장한 아담한 건물들 사이로 SOS 어린이마을 한국본부(본부장 : 장효원 요셉 신부)가 자리하고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사무실에서 본부장 신부님을 만나 뵈었다. 사무실 한쪽 벽면엔 어린이마을 아이들의 스냅 사진들로 가득한데, ‘모두 다 내 아이들’이라고 소개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에서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께서 일일이 다 찍으셨다는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맑고 밝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세상시름을 잠시 잊게 한다.

 

 

SOS 어린이마을은 창설자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 1919-1986)의 설립이념을 따라, 세계 131개 국에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맡아 양육해 주는 곳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1963년 대구에서 처음 설립되어, 현재 서울, 순천을 포함하여 전국에 세 개의 마을이 있는데, 대구 SOS 어린이마을은 내년이면 설립 4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어린이마을에는 보통 10∼15 가정이 있는데, 이곳 대구에는 현재 114명의 아이들이 12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을 맡아 키워주는 ‘엄마’(마을에는 각 가정마다 엄마가 있어서 우리네 보통 가정과 꼭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들은 두세 살 된 어린 아기부터 고등학생 자녀까지 뒷바라지 하면서 엄마의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때때로 엄마 혼자의 힘으로 부족함을 느낄 때는 ‘이모’가 와서 도와주기도 하는데, 여기서 ‘이모’는 장차 ‘엄마’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모’의 역할 역시 ‘엄마’ 못지 않은 깊은 모성애를 지닌 사람이라야 하는데, 은퇴(정년 55세)하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미리부터 연습해 두는 것이라 한다. 25세에서 35세 미만의 고졸 이상 독신여성이라야 가능한 어린이마을의 엄마들. 누가 권해서도 아니고 스스로의 의지로 7~8명 남짓 자녀들을 맡아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키워내는 힘, 과연 그 힘을 어떻게 글로 설명할 수 있을지. 비록 친엄마가 아닌 인위적인 관계로 맺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인연의 고리는 하느님 사랑 안에서 변함없이 지속된다 하니 실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엄마’라는 자리, 누구나 엄마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누구나 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갈수록 이기주의와 자신의 권리 찾기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엄마들 앞에서 진정한 엄마의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니까 말이다. “시험이 있다면 부모가 되는 자격시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라시던 본부장 신부님의 말씀은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알게 모르게 나름대로 상처와 아픔을 지닌 채 들어 온 아이들이지만, 안정된 공간과 더불어 ‘엄마’의 품안에서 그들의 상처는 세월이 흐르는 만큼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상처를 안고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어 때때로 아이들 스스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 상처를 치유해 주는 역할 또한 저희들의 몫이지요.”라는 홍보담당 라은숙 미카엘라 씨. “이젠 단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들이 얼마나 잘 배워서 다시 사회로 환원하느냐 하는데 더 큰 의의를 둘 때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로선 아이들의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해야 됩니다.”라고 덧붙여 설명해 준다.

 

SOS 어린이마을에서는 특별히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더욱 독려해 주고, 학교 공부를 잘 못 따라가면 엄마나 혹은 교육담당 선생님과 상의해서 외부 봉사자를 청하여 가르친다. 아이들이 자라서 중학교에 가게 되면 남학생들은 만촌동에 있는 청소년 생활관으로 옮겨가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내게 되고, 여학생들은 현재와 같이 그대로 엄마와 함께 지낸다고 한다.

 

현재 SOS 어린이마을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일체의 생활비와 교육비, 인건비 등이 최저수준의 국가보조와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유지되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각 가정들은 기본적인 시설이나 생활비로 빠듯한 살림을 꾸려 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교육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하는데, 넉넉하지 못한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는 하느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너만의 아이, 나만의 아이가 아닌, 세상 모든 어린 아이들이 축복받는 날이 올 때까지 SOS 어린이마을의 아름다운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창설자 헤르만 그마이너의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우리 아이입니다.”라는 말씀처럼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아픔 없이 살아갈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대해 본다.

 

SOS(Save Our Souls), “저희 영혼을 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