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요? 기쁘죠, 아니요, 안 힘들어요. 오히려 이 일에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고 사는데요. 저야 당연히 할 일을 할 뿐이죠….” 자원봉사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대구 시내 종로에 자리한 가톨릭 근로자회관의 주일 아침, 오전 11시 30분 미사가 끝나자 가톨릭 근로자회관의 좁은 뜰 안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이미 진료를 시작한 경북대학교 의료 봉사 진료실 앞에는 근로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대기 중에 있고, 아기 돌보기, 한글 교실, 개별 상담 등 사무실 곳곳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가톨릭 근로자회관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상담 봉사를 하고 있는 이미향(제노베파, 수성성당) 씨. 그녀는 벌써 5년째 주일마다 이곳에 와서 상담자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다. 영문학을 전공하여 현직 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던 터라 외국인과의 접촉이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았을 그녀가 특별히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자원봉사 일에 뛰어든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2001년 불의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여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여 제2의 삶을 얻게 된 그녀는 이 모든 게 다 하느님의 은총이었다면서, 무언가 좋은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가톨릭 근로자회관에서 외국인 근로자 상담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대구주보’ 공지를 보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 이미 본당에서 3년여 시간 동안 어머니 교사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었던 그녀가 사고 후 새롭게 시작한 상담 자원봉사는 그녀의 삶에 또다른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이 일을 두고 참 행복한 유(U)턴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이미향 씨는 “저 혼자만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저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시는 이들도 많은데 송구스럽다.”면서 “주일마다 이곳에 와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연을 듣고 나면 또 한 주간 그들을 위해 발로 뛰며 일처리를 하고 다니는데, 일이 잘 해결 될 때 얼마나 뿌듯한지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라며 기뻐한다. 그녀의 말대로 주로 주일에 상담을 통한 접수를 받고나면, 봉사자들은 평일에 다시 시간과 자비를 들여 후속 처리를 위해 발품을 팔며 찾아다닌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마냥 기쁘다. 무엇이 그토록 자원봉사자들을 기쁨 속으로 끌어들이는 걸까,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이곳 가톨릭 근로자회관에 찾아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로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 등지에서 온 산업연수생들로 대부분 성서공단이나 3공단 등지에서 일하고 있다. 따라서 상담 내용들 역시 노동 문제, 출입국 문제, 국적 문제, 인권 문제, 여성 노동자 문제, 생활 문제 등으로, 그 중 상당수는 임금 체불과 산업 재해에 관한 것들이다. 한국말도 서툰 데다 경상도 사투리는 더더욱 알아듣질 못하니, 때때로 보상받아야 할 것들조차 억울하게 놓쳐버리는 일도 꽤 많은 편. 그런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가톨릭 근로자회관에서의 상담은 그들 삶의 끈이자 삶을 지탱시켜 주는 한 방편이라고 하니, 참으로 보금자리와도 같은 곳이라 하겠다.
취재 당일,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필리핀 여성근로자 한 명이 상담실로 들어와 무언가 도움을 청한다. 역시나 임금 체불과 계약 조건을 어긴 과도한 노동 시간에 관한 내용. 이미향 씨가 다가가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보자며 위로를 해준다. 걱정과 불안의 눈빛으로 찾아왔다가 상담을 통해 밝은 낯으로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이미향 씨는 “작은 도움이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렇게 가톨릭 근로자회관에서 ‘외국인 근로자 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향 씨 외에도 라은숙(미카엘라), 백경미, 손병해(프란치스코), 윤혜선(루실라) 씨까지 모두 다섯 명이다. 그리고 지난 9월 가톨릭 근로자회관 관장으로 새로 부임한 임종필(프란치스코) 신부 역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이제는 주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밤 10시까지 회관을 개방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이 언제라도 찾아와서 쉴 수 있는 도심 속의 쉼터가 되도록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자원봉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미향 씨.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가톨릭 근로자회관의 또 다른 자원봉사자들. 그들은 외국인 근로자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지를 체득하면서, 오늘도 타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사랑을,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갑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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