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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이야기 - 이주악 할머니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글|이은영(데레사), 사진|김선자(수산나)·본지기자

이주악 할머니는 서구 시장 근처에서 아이들 잘 키우기로 소문난 할머니이다. 그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 아기들의 젖내가 코 끝에 전해진다. 그러고 보니 방한켠에선 돌도 안 지난 조막만 한 아기들이 쌔근쌔근 단잠을 자고 있다. 이주악 할머니는 지난 25년간 아이들을 봐주고 번 돈으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쌍둥이 형제와 부모 없는 아이들, 그리고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보살피며 살아왔다. 힘들게 살아온 세월만큼 어느새 늙어버린 할머니(62세).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주름살보다 할머니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들을 쏙 빼 닮은 말투와 웃음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 25년

모두가 밥 먹기도 힘들었던 옛날, 할머니는 맏딸로서 빠듯한 살림을 일구느라 시집갈 엄두도 못 내고 서른을 넘겼다. 그 와중에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인 할아버지. “원래 내가 아이들을 참 좋아해. 나는 처녀였고, 남편은 재혼이었지만 상관없었어. 남편의 자식인 3남매가 너무 이쁘다기에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지.” 결혼 후에도 여전히 늘지 않는 살림에 할머니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아기들을 봐주기 시작했고,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에겐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없다.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 남편이 데려온 아이 셋이 있기에 더 낳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 오랜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니 자꾸만 젊어지는 할머니. 이젠 아이들의 눈망울과 숨소리만으로도 어디가 아픈지, 무슨 마음인지 다 헤아린다고.

 

할머니가 지금 봐주고 있는 아이들은 4개월 된 신생아부터 5살 난 꼬맹이까지 모두 11명. “요즘 맞벌이 부부들 얼마나 바뻐? 애 볼 시간이 없잖아. 어떡해. 할매가 봐야지.”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겨 놓으면 안심이란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부모들은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면 겁부터 나는 젊은 엄마들은 차라리 할머니 댁에 맡겨놔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여튼 할머니에겐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아이라면 다 사랑스럽다.

 

서구시장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할머니 또한 어렵게 살았던 기억이 있어 큰 돈 안 받고 아이들을 봐준다.

 

나의 보물 쌍둥이 - 본우와 본현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생후 2개월 된 쌍둥이를 맡게 되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본우와 본현 군이다. 쌍둥이가 5살 되던 해, 갑자기 쌍둥이 부모님은 갈라서게 되었고, 아이를 맡겨 놓고 사라진 뒤 쌍둥이 아버지와는 가끔 연락이 되지만 어머니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그때 고아원에 보낼 수도 있었는데 쌍둥이하고 정이 많이 들어서 헤어질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냥 내가 키우기로 했네. 지금은 걔들 없으면 못 살아. 내 인생의 전부거든.” 쌍둥이 이야기에 할머니는 손으로 눈을 훔치신다. “예쁘게 커 줘서 참 고마워. 공부도 얼마나 잘하는데. 항상 평균 90점 이상이야.” 어느새 본우와 본현이 자랑이 시작되고 할머니는 으쓱해진다. 다행히 본우와 본현이는 이런 할머니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효자이다. 할머니께서 베푸신 큰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단다. “새벽 2시까지 방에 불이 꺼지질 않아.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밥도 많이 먹으면 잠 온다고 굶기도 해. 그런데도 아픈데 하나 없고 튼튼하지.” 전기세와 기름 값 아끼느라 공부가 끝나면 할머니 방으로 건너오는 착한 쌍둥이들. 학교에서 거두는 공과금을 제때에 못 내주거나, 친구의 참고서를 복사해서 쓰는 것을 보면 할머니는 마음이 아리다.

 

얼마 전 할머니에겐 보물이 또 하나 생겼다. 복지관 소개로 만난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아이가 할머니 마음에 추가된 보물들. 고등학교에 다니는 쌍둥이를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사양하고 싶었지만, 고아원보다 당신이 키우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마침 대구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조금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바쁜 할머니이지만 부족한 시간을 또 쪼개어 홀로 사는 할머니 3분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주머니 한 분을 위해 도시락과 간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하루 2번씩 그들을 찾는다. 게다가 목욕도 시켜드리고, 손톱·발톱 정리와 더불어 머리도 만져 드린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할머니의 남편은 중풍으로 열여섯 번이나 쓰러졌었다. 살아오면서 놀란 가슴을 몇 번이고 쓸어 내리고 또 쓸어 내렸을 할머니. 그러나 할아버지라도 계시기에 잠깐 잠깐 도시락 배달도 할 수 있고, 쉴 여유도 생긴다. 할아버지가 맡은 일은 아이들의 기저귀를 가는 것.

 

거동이 불편해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은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살아서 할머니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는 참 고맙다.

 

“그런데 이젠 좀 힘들어. 그래도 쌍둥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 하려면 좀더 해야지.” 라며 여전히 당신보다 쌍둥이 걱정을 먼저 하신다.

 

할머니의 이런 숨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상도 꽤 받았다. 그러나 당신이 받는 상보다 쌍둥이가 받아오는 상이 훨씬 더 기쁘단다. 더군다나 할머니 잘 모시는 색시 만나서 장가들겠다는 쌍둥이가 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학교에서 돌와왔을 때 다른 부모들처럼 요것 조것 맛나는 것 해주지 못해 내내 마음에 걸린다는 이주악 할머니.

 

할머니 댁을 나서는데 손을 발인양 사용하며 빠른 속도로 방을 기어다니던 갓 돌을 넘긴 돼지(우리 기자들이 붙인 별명)와 카메라를 들이대자 갑자기 빛나는 눈으로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들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많이 가지지 않았으면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할머니. 퍼주고 또 퍼주고도 미안해 하시는 이주악 할머니의 모습은 이미 성모님을 닮아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며 오히려 삶의 희망과 기쁨을 얻었다는 할머니가 쌍둥이를 비롯한 아기천사들과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게 당신의 바람을 이루어 나가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