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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글 정태우 아우구스티노 신부|이곡성당 주임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꿈에서 어머니를 뵈었다. 아버지는 가끔 꿈에 나오셨지만 어째서인지 어머니는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하늘나라에 계실 터이니 꿈자리로 마음이 뒤숭숭하지는 않지만, 어머니께 효도는 당최 한 적이 없고 무심하고 못되게 군 기억만 잔뜩 있어서 이렇게 한 번씩 생각이 날 때마다 죄송하기 이를 데 없다. 글쓴이에게 신앙이 없었더라면, 두 번 다시 뵐 수 없다고 생각했더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복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부모 형제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다 보니, 육친의 정은 발밑에 땅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늘 거기에 있는 줄로 생각했었다.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고, 부모의 사랑을 아쉬워하며 사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신부가 되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성직자 노릇을 하려니 실수가 많았을 것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듯해진다. 역시 지나간 뒤에야 그리움을 알고, 없어 봐야 아쉬움을 배우는 모양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어머니가 필요하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생존하고 사람답게 자라기 위해서는 육신의 어머니가 있어야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 예수님의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영의 어머니가 계셔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성모님을 부탁하시면서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하셨는데, 이는 또한 모든 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로써 우리는 하늘나라 어머니를 모시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맏형이 되시므로 그분의 동기요 지체인 우리 신자들이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요한 사도께서 주님의 유언을 받잡고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듯이, 우리도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 성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이것은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참으로 기분 좋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착하시고 인자하시지만 또한 주님이시다. 우리의 모든 죄악과 결점을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줄로 믿으면서도 아무래도 두렵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참회하지 못하고 미적거리거나 부끄럽고 송구해서 감히 선뜻 아뢰지 못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서 어머니가 필요하다. 성모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고 더없이 깨끗하시지만 그래도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시고, 사람의 모든 약점과 불편한 사정들을 다 지니고 사셨다. 그래서 성모님께는 조금 더 허물없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고, 투정을 좀 하고 어리광을 피워도 받아 주실 것 같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부끄러운 것이 없는 법이니까. 우리 손을 잡아 이끌어 주님께 데려다 주시는 어머니, 아드님의 십자가 곁을 떠나지 않으셨듯이 우리가 고통에 시달릴 때 함께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어머니!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손가락질하고 등을 돌려도 어머니는 내 편이다. 마음이 짓눌려 괴로울 때 “그래, 그래, 엄마다! 엄마 여기 있다!” 하고 안아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죽을 사람을 살리는 은혜가 된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효성스러운 자녀가 되기 위하여,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십자가 밑에 서 있어야 한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마다, 지치고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우리 곁에 함께 계시는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