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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푸른 사람들의 이야기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다.”
- 무라카미 하루키


글 황영삼 마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왜 신부가 되려고 해요?”, “복음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이 두 질문은 제가 신학교 입학 면접 때 들었던 질문입니다. 면접장 입구에서 선배들이 긴장 풀라고 농담을 건네주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질문만 기억에 남고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마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말을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질문을 하셨던 신부님들이라고 정답을 아시고 물으셨겠나 싶습니다. 이 질문은 어쩌면 평생 풀면서 살아야 할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물음이니 말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저런 면접의 시간이 있습니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나 책임감을 요구하는 학교행사에는 그만큼 경쟁률도 세서 면접을 통해서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면접을 주관하고 학생을 선발해야 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 학생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성격은 어떤지, 프로그램과 성격은 맞는지, 관계 안에서 태도는 어떤지 잘 봐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그램도 힘들어지고 그 안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 학생들도 버거워지고, 그걸 지켜보는 저희도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면접에 들어갈 때였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취업 면접처럼 긴장하며 대기하는 것을 안쓰럽게 보던 저에게 동료 신부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시간도 학생들에게 필요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곧 사회로 나가야 할 친구들이니 면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경험치도 높여주는 것이 학교가 할 일이겠지요. 그리고 면접이 끝나니 친한 학생들이 묻습니다. “신부님, 저 망했죠?”

그러고 보니 저도 신학교 입학 면접 때 이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 망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수많은 만남과 선택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면접을 통과하며 지금까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면접하나 잘못 봤다고 망하는 세상은 아니니 우리 학생들에게 ‘다음’을 이야기 하기로 합니다. 우리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니니 말입니다.

“이 시대의 신부란 무엇하는 사람인가?”,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두 질문도 평생을 가지고 가는 질문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또 한가지 안고 사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난 음악하는 신부인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음악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좋아하는 사람인가?’ (아니오.) ‘음악을 다른 사람보다 탁월하게 잘하는가?’ (아니오.) ‘음악 없이 죽고 못 사는가?’ (아니오.) ‘음악 공부를 많이 했는가?’ (아니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음악으로 많은 일을 해 왔나? 그 일을 위해 시간과 노력, 돈까지 왜 그렇게 많이 투자해 온 건가?’ (필요하니까,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거 같아서.)

이게 솔직한 제 대답입니다. 있어야 되는데 없는 것들을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이제 ‘황영삼’으로 어디든 검색하면 제 이름을 달고 있는 음악이 나옵니다. 일이 이쯤 되니 ‘다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음악하면서 즐거웠는가? 보람을 느꼈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난 음악하는 신부인가?’ (그래, 지금은 그런 거 같아.)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잘하는 사람이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오래 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다.’ 음악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열정 있는 교우들을 많이 만났고 그걸로 행복했고 보람을 느꼈다면 잘 시작했고 잘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 일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로 믿어도 될 듯합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다음’을 보여 주시고 허락해 주시니 또 그렇게 살아보기로 합니다.

링에 오르는 권투 선수가, 긴 거리를 뛰는 마라톤 선수가, 폐가 터질 듯한 순간을 참고 물살을 가르는 수영 선수가 단지 책임감과 의무감만으로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한 경기를 끝내고 ‘다음’을 준비하며 매일을 살아내는 것은 그 안에서 행복과 보람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에 고통을 언제든 맞이하며 견뎌 내며 살아내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1라운드를 시작하는 우리 학생들, 이제 5라운드를 시작하는 제가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자신의 길을 살아냅니다. 인생은 각자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물음을 각자 가지고 ‘다음’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