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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심장에 타오르는 불”


글 정태우 아우구스티노 신부|이곡성당 주임

 

매년 이맘때가 되면 글쓴이는 별로 기쁘지 않은 기념일을 하나 맞이한다. 올해도, 아무도 모르는 달력의 작은 표시가 그 날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그것은 바로 심근경색 기념일! 올해로 9주년이 되는데, 처음 타 본 앰뷸런스 안에서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바로 그 날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의 공포도 몸서리나는데다가 심근경색은 정말 끔찍하게 아프기 때문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9년 전에는 아직 보속을 덜 했는지 하느님께서 부르지 않으셨지만, 다음번에 진짜로 하느님께 가는 날에는 틀림없이 또 심장일 것이다.

심장의 심(心) 자는 육체의 장기를 가리키는 글자이면서 동시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 용법은 서양 말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영어의 heart나 라틴어의 cor는 모두 심장과 마음을 동시에 뜻하는 단어이다. 글쓴이가 일하고 있는 이곡성당에는 나무로 만든 예수 성심상이 모셔져 있는데, 옥외의 단 위나 지붕 위가 아니라 현관에 계신 덕분에 가까이 가서 손이며 옷자락이며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있다. 주님의 양손과 발에는 못에 찔린 자국이 있다. 또 주님께서는 가슴을 드러내시고 가시관이 씌어 있는 당신의 심장을 보여 주시는데, 그 심장에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손, 발의 못자국과 가시관은 수난의 고통을 뜻하는 것이다. 가시관이 머리가 아니라 심장에 씌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입으신 마음의 상처를 표현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마음도 가지고 계셨고, 이 마음으로 아픔을 겪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장에 타오르는 불꽃은 바로 성령의 불, 사람을 극진히 위하시는 사랑의 불이다. 이 불이 주교의 안수로 사제품을 받는 사람에게 옮겨 붙는 것이다. 로만칼라를 하고 제의를 입었다고 해서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교우들을 위한 사랑의 불이 심장에 타고 있는 사람이 사제이다. 그래서 교우들이 서품 기념일이나 영명 축일을 맞은 신부에게 “사제의 맘은 예수 맘, 우리를 애써 돌보시며” 하고 노래를 불러 준다. 실로 부끄러운 노래 넘버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끄러운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만분의 일도 닮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교우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쓴이에게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성품의 은사를 아예 거두어 가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사제의 심장에서 이 불이 영 꺼져 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또 부족하나마 교우들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문드문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불이 늘 힘차게 타오르고 있느냐 하면, 그건 좀 자신이 없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전력투구하는 사랑, 내일을 위해 남겨두지 않는 사랑, 피와 물을 있는 대로 다 흘려 내보내는 사랑을 할 용기가 있는가? 주님께서 태우야, 바로 지금! 하고 명하시면 망설임 없이 예, 주님! 하고 뛰어내릴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심장은 사람을 위한 사랑으로 상처를 입으셨는데 불초한 이 신부의 심장은 술, 담배를 많이 해서 고장이 났으니 이렇게 송구할 데가 없다. 다음번 심장이 멎기 전에 화르륵 하고 제대로 한 번 타올라야 할 텐데, 노상 잔불이나 쑤석거리다가 마지막 날을 맞게 되면 정말 큰일이다. “이 녀석아, 말은 반지르르하게 잘 하는구나!” 하고 나무라시는 호통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