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현습지에 가 보신 적이 있는지요? 금호강이 대구를 통과하면서 잠시 쉬어 가는 이곳은 마치 도심 속 오아시스처럼 여유롭고 편안합니다. 강 건너편에 아파트가 즐비한데,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전혀 다른 야생의 공간이 펼쳐집니다. 도심 가까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습지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곳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왕버들나무를 바라보며 철새들의 청아한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초록빛 생명의 힘에 금세 젖어 들게 됩니다. 창조주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옵니다.
특히 이 땅에는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수달, 삵, 담비 등 총 14종의 법정 보호종이 살고 있습니다. 각종 개발을 피해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팔현습지는 야생 생물들에게 마지막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를 생태학적 용어로 ‘숨은 서식처’라고 부르는데, 이런 곳은 생물 다양성을 위해 반드시 보전해야 하는 핵심적인 생태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곳에 낙동강 유역 환경청에서 교량형 보도교 공사를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산책로 겸 자전거 도로가 생긴다니 누군가에겐 좋은 점이 있겠지만 이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야생 동물들은 이곳에 더 이상 살기 어렵게 되겠지요. 팔현습지 건너편에 잘 정비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이미 있는데, 멸종 위기종들의 숨은 서식처를 파괴하면서까지 또 다른 길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우리네 편의 시설을 만들려고 오랫동안 이곳을 안식처로 삼고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을 꼭 내쫓아야 할까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비어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우리 눈엔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공간이 누군가의 집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수많은 피조물들이 삶을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땅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그들도 우리처럼 안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야생 모두를 위한 공존의 질서가 필요합니다. 인간을 위해 개발해도 괜찮은 곳과 야생을 위해 보전해야 할 곳을 구분하고, 적정 수준의 꼭 필요한 개발만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것을 명확히 하고,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되풀이해서 강조하듯이, 우리는 ‘공동의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유기체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140항) 이 집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운명을 같이 합니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고, 네가 존재하지 않으면 나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네 인간은 종종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자신하지만 지구 역사상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습니다. 함께 잘살기 위해서는 ‘공존’을 선택해야 합니다. 공존, 곧 ‘더불어 살아가기’는 창조의 질서이자 모든 생물종이 지켜 온 생존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런데 자기집을 함부로 부수고 불태우는 이들을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생태 위기 시대에 우리가 정말 현명한 존재가 되려면 ‘더불어 사는 인간’인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겸허하게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사는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이들, 그렇게 인간이 더불어 살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날 때 우리 공동의 집은 안녕할 수 있겠지요.
‘호모 심비우스’로서 우리가 하느님의 다른 피조물과 공존하려면 혼자만 잘살겠다고 욕심부리지 않고 그들을 위해 조금만 물러설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야생의 동식물들에게 땅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마음, 그들의 안녕을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노력이 있을 때 인간은 그들과 진정으로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공존’을 위하여 인간에게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들로 이 땅을 다 채우지 않고 조금은 비운 채로 살아볼 수도 있어야겠습니다. 멀찍이 바라볼 수 있어 좋은 곳, ‘너를 위한 여백’을 남겨 둘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여백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느껴 보고 싶다면 팔현습지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마침 이곳에서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가 매달 한 번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다고 하니 함께 가면 더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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