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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주는 교리
자아존중감(Self
-esteem)과 아이들의 신앙생활


전재현(베네딕도)|신부, 대구대교구청 청소년 담당

마음 열기

어느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이란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한 아이가 앞면에는 어머니, 누나, 동생, 자기를 그렸는데, 뒷면의 한 구석에는 남자 한 사람을 조그맣게 그려 놓았습니다. 이 남자는 누구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그 어린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요, 저녁 늦게 들어오시고, 아침에 우리하고 밥도 같이 안 잡수시고, 우리하고 얘기도 잘 안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집에 사는 식구지만요, 우리하고 잘 안 지내시니까 여기에다(뒷장을 가리키며) 그렸어요.”

 

이 그림은 아이의 마음에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줍니다. 아버지와 자녀들간의 마음의 교류가 없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무심해 보이는 아버지에게도 엄마와 똑같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는 어째서 아버지 자리가 비어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부모님들은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깊은 속마음의 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편, 최근에 한국 청소년 상담연구원에서 예술, 과학, 교육 등의 분야에서 창의적 성취를 이룬 30세 이상의 인물을 연구한 결과에는 우리가 주목할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자기를 믿고 자랑스러워하며 칭찬해 주었다’는 점을 공통으로 꼽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긍정적인 말이 담긴 칭찬과 격려는 자신감, 즉 자아존중감(Self-esteem)을 키워줌으로써 더 많이 성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모의 잔소리, 부정적인 언어와 태도는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네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냐?’, ‘착한 어린이는 그러면 못 써!’

‘넌 어쩜 인사도 제대로 못하니?’, ‘우리 애는 아직 철이 없어요’

‘넌 왜 항상 그 모양이야. 하는 일마다 말썽이니!’

 

특히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부모가 남들 앞에서 자신을 망신 주고 깎아 내린다면 아이는 버림받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내 편이겠지’하는 기대감이 무너지고 나면, 황량한 사막에 혼자 서 있는 것과도 같은 슬프고 참담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결국 아이로 하여금 부족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함으로써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게 되며, 쉽게 좌절하고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격려받는 아이와 격려받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격려받는 아이는 자발적인 성향을 지님으로써, 인생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변화에도 쉽게 적응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격려받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생각하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요한 1, 12참조).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가 쏟아 붓는 애정과 격려로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쏟아 붓는 애정과 격려로 성장하고 성숙해 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님들은 과연 얼마나 하느님의 격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만일 부모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부모는 하느님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이미 오래 전에 멈춰버린 상태일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느끼지 못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전해주기란 참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점점 더 성당에서의 생활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만나기 힘든 아빠와도 같이, 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요즘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주듯,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내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 하느님은 나를 미워하시나 보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확실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것은 참으로 시급한 일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심어진 하느님께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제때에 수정되지 않으면 그릇된 신앙관으로 고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숙한 신앙인들도 가끔씩 하느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플 때, 충격을 받았을 때, 학기말 시험 때뿐만 아니라, 우리가 힘들고 불안할 때에는 쉽게 불러 댈 수 있는 잡역부처럼 불려지고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어머니가 먼저 하느님의 사랑에 눈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성 이냐시오는 좋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나달(Nadal)은 성 이냐시오에 관해 쓰면서, 이 성인이 “활동 속에 있는 명상가”(Contemplativus in Actione)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 이냐시오는 기도에 못지 않게 활동, 노고, 공부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모든 것은 하느님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활동 속에서 명상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오늘 하루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나를 명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명상은 우리에게 한없는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주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나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신 하느님의 보살핌을 확인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의 자아존중감을 키워갈 수 있고,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서 안에서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엄마, 아빠가 자녀를 사랑하기를 잊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잊는다 해도 주님은 당신 자녀를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이사 49, 15참조).

“주 야훼의 사랑 다함없고 그 자비 가실 줄 몰라라. 그 사랑, 그 자비 아침마다 새롭고 그 신실하심 그지없어라.”(애가 3, 22-23).

“주께서는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심하게 벌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신다.”(애가 3, 3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묵시 1,5참조).

 

성서는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같아서 잘 읽어보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서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닮아간다고 합니다.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 7참조).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며,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차별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어머니인 내가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기꺼이 봉사하며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 대하듯 귀하게 여긴다면, 우리 아이에게 예수님을 닮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예수님을 닮은 어머니를 따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천하기 

‘사랑은 손으로, 입으로, 눈으로, 귀로, 발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신체적 접촉(손으로)과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입으로), 또 자주자주 눈길을 마주치며(눈으로) 하는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귀로), 아이에게 먼저 성큼 다가가서는(발로)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의 표현이 그만큼 구체적일수록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 때 이 세상 안에서도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매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하느님께서 오늘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가?’를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을 담아 보낸 편지인 성서를 함께 읽음으로써 하느님 안에서의 평화를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참으로 좋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이러한 노력들이 아이들의 마음속 한가운데 하느님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성서 말씀을 우리 아이와 함께 묵상해 보세요.

시편 139장 / 루가 12, 2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