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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예수님 어깨 위의 어린양”


글 이한웅 사도 요한 신부|후쿠오카교구 선교 사목

 

장마가 시작되고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르는 7월이 되었습니다. 많은 본당과 지역에서 여름 신앙학교 청소년 캠프 준비로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있는 후쿠오카교구의 사가현에는 아이들이 적어서 매년 7월 바다의 날(일본의 공휴일)에 사가지구 9개 본당이 함께 모여 여름 신앙학교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신앙학교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복음적 가치관을 확립하고 양성하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9개 본당이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 차야마성당에서의 사목을 마감한 2020년 3월, 제가 첫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곳은 기타큐슈에 위치한 유쿠하시라는 본당이었습니다. 유쿠하시는 신자수 900명 남짓한 공업도시의 본당으로 젊은 세대가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입니다. 가톨릭 유치원에 재적된 아이들도 약 100명으로 많은 편이었고, 고토 출신의 신자 분들의 거주지에 위치한 토요츠 공소에도 약 100명의 신자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막 시작된 시기라 발령 직후에는 신자 분들과 함께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발령 직후 4월의 성삼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도 사목평의회 위원인 신자 분들만 오셔서 조출하게 지내게 되었고 긴급 사태 선언이 끝날 때까지는 매일 혼자서 미사를 봉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당과 유치원에 인사조차 제대로 드릴 수 없던 저는 각 가정에 편지를 부치고, 신자 분들이 성당에 오지 못한 약 두 달간 매일 대여섯 가정을 방문해 인사를 겸한 가정축복을 다녔습니다. 젊은 사제를 환대해 주시는 신자 분들도 계신 반면 ‘듣보잡 신부’의 뜬금없는 가정방문이라 전화로 거절당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엔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현관 문 앞에 서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아주 짧은 축복기도만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임 직후 가정방문을 다닌 시간이 있었기에 본당 신자 한 분 한 분의 (마스크를 한) 얼굴과 성함을 금세 외울 수 있었고 본당공동체에도 빨리 적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긴급 사태 규제 후에는 굉장히 바쁜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밀접을 피하기 위해 주일미사를 네 번으로 분산해 봉헌하고 예비신자교리 또한 개개인의 상황과 사정에 맞추어 날마다 일대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저 질환을 가진 고령의 신자 분들이 점점 성당에 나올 수 없게 되면서 매주 수요일에 있는 병자 봉성체를 하는 신자 분들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주임신부로서의 첫 본당이었기에 식별없는 열정만 가득한 나머지 지치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끼니를 거르거나 자동차로 이동시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로 떼우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엔 저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한 어리석은 사목을 했었던 것입니다. 결국 당시의 우매함 때문에 저는 이듬해 생각지도 못한 몸과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몇몇 분들께 수년 전 제가 카카오톡이나 라인을 비롯한 모든 SNS에서 갑자기 사라져 연락을 취할 수 없어 살아 있는지(?) 궁금해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은 예상치도 못한 병을 앓게 된 것이 부끄러워 가족을 비롯한 그 누구에게도 저의 현황에 대해 말하지 못한 채 음신불통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년간 유치원과 더불어 교구 청년사목과 전례담당, 성소담당을 겸임하면서 제 역량에 비해 과중한 업무에 짓눌린 것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그 시기에 조현증을 앓고 계신 분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초짜배기 신부의 식별없는 우매한 열정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예수님처럼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힘이 되어 주고자 전문적인 지식도 자격도 없이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망상으로 인한 거듭된 인신공격을 받아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질 즈음엔 매일 원인 모를 통증과 거식증,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병원의 진단 결과는 중도의 우울증이었고 의사로부터 1년간의 휴직서를 교구에 제출하도록 권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임신부로서 제 소임을 뒤로한 채 떠날 수 없었고 결국엔 증상이 심해져 두 달 동안 소임지를 떠나 가르멜수도원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늘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 15,6) 제가 서품성구로 정한 구절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사목자가 되고 싶어 이 구절을 택한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양인 저를 찾아 주시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늘 기억하기 위해 정했습니다. 하지만 첫 주임신부로 지내며 저는 어느새 ‘주님의 양’이 아닌 목자’가 되고자 했고 그것은 저의 ‘교만함’이라는 것을 병든 몸과 마음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때마침 쓰러지기 전 마지막 주일이 착한 목자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사제로서의 제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어깨 위에 짊어지신 작은 양,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을 헤매기 일쑤인 어린양,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징이 되는 나약한 양.’ 그것이 바로 제가 걸어가고 있는 사제직이라는 것을 마음에 되새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저를 당신 어깨 위에 짊어지고 걸어가고 계십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 어떻게 지냈는지, 유쿠하시성당에서의 시간에 대해 다음 호에서 한번 더 나누고 싶습니다.

 

* 추신 : 저는 현재 무척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