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이 세상에 착하고 맑은 영혼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 맛 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대구에서 고령으로 향하는 88고속도로를 달려가다 성산으로 들어서면 큼지막한 복덩이 표지가 있는 건물이 눈에 띈다. 그곳엔 뇌성마비 장애아들과 그들을 돌보는 일손들이 24시간 분주하기만 한 국제재활원과 성모의 덕산요육원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재활원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귀숙 씨. 삶의 질곡을 넘어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30대가 부럽지 않을 것 같은 밝은 표정과 의욕으로 가득차 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토록 일에 매달리게 하는 것일까.
1957년 설립된 국제재활원은 장애인 생활시설로써, 1989년도에 대구대교구에서 정식으로 관리권을 인수하여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재활원 운영비의 65%는 국고보조로 이루어지고 있고 나머지 35%가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생활보호대상 및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하여 6세에서 48세까지의 지체장애인 109명의 삶의 터전으로, 주로 뇌성마비, 소아마비, 근육질환 등의 중증·중복장애인들의 재활과 교육에 치중하고 있으며, 새로운 치료 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가정을 가진 주부로서 가정생활과 병행해서 평소 봉사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녀는 국제재활원과의 인연을 두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또한 “너무 일에만 빠져서 자칫 하느님의 뜻을 지나치게 될까 두렵습니다.”라는 우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언제나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의 가족들은 아직 건강하니까 정작 나의 손길이 더 절실한 이곳 재활원에서의 삶에 온 마음을 다해서 봉사하고 싶다는 김귀숙 씨.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재활원의 일을 맡아 하면서부터 사회복지분야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늦은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또다시 경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갖게 되었다. 일과 가정 생활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열심히 살려는 그녀의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재활원 가족들에게도 활력소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대구의 자택과 고령을 오고 가는 출퇴근길에서도 쉴 새 없이 재활원 가족들의 염려로 가득찬 그녀에게는 가슴 한구석 아릿한 소망이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전동휠체어가 그것.
중증 장애를 가진 재활원 가족들에게 무엇보다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휠체어인데, 특별히 장애가 심하여 보통의 휠체어를 운전할 때마다 사력을 다해 이동하는 장애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 한 켠이 무너지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돈다고 한다. ‘전동휠체어만 있어도 저렇듯 힘들진 않을텐데, 조금이나마 몸의 기형을 막을 수 있을 텐데....’하는 마음으로 중증 장애아들을 지켜보는 그녀. 고급승용차보다도 더 절실하기만 한 10여 대 남짓 전동휠체어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마침내 두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마는 그녀의 모습에서 깊은 모성을 느끼게 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우리 재활원 식구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봐 주시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물질을 나누어 주셔도 좋겠고,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으로 노력봉사나 기도를 해주신다면 그 기도 역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장애가 있기 때문에 어렵게 사는 일이 없는 세상이길 빕니다.”
김귀숙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겨울햇살이 그녀의 마음 만큼이나 포근하고 따사로웠다. 자기의 것을 이웃을 위해 퍼주고 또 퍼주어야만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사람,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 안에서 비로소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 그녀의 삶이 그토록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사야 43,4)이라는 국재재활원의 모토처럼, 재활원의 복덩이(재활원에서는 장애우들을 모두 복덩이라 부른다)들이 새해에도 더욱 사랑받고 건강한 한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기쁘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 삶도 덩달아 기쁘고,
슬프고 우울한 생각을 많이 하면 삶 또한 슬퍼진다고 했던가요?
항상 밝고 기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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