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
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빼다박았을 때 누가 봐도 자식임을 알 수 있을 때 우리는 우스겟소리로 거푸집이라고 한다. 똑같은 것을 여러 개 찍어 내는 거푸집처럼 부모의 얼굴이 그대로 아이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보는 사람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기쁨이다. 태어난 아이가 점점 더 내 모습을 닮아가는 기분은 부모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행복이다. 그래서 더욱더 똑같아 보이기 위해 아이들과 커플 티를 입고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닌다. 그 모습을 보는 주위 사람들도 기분 좋을 정도로 부모와 그들의 거푸집은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무자녀 부부에 대한 보고서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실시한 최근 무자녀 부부의 특성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한 네 쌍 중 한 쌍은 자녀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 세계가 저출산 문제로 고통받고 있기에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서 저출산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과 상관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두 가지 시선
얼마 전 『엄마가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기혼이지만 자녀가 없는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주로 자녀가 없는 부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겪게 되는 일, 그리고 현재의 심정 등을 다루고 있다. 자녀가 없는 부부에 대해 사회는 쿨하고 멋지다는 반응과 사회를 위협하는 저출산 주범이라는 두 가지 시선으로 본다. 이 책은 두 가지 시선을 모두 소개하며 결론적으로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자녀를 갖지 않으려는 부부를 욕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사회의 태도
정부는 당근과 채찍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예컨대 아이를 가질 때 필요한 의료비 지원 및 주택 청약에서 특별공급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이다. 이것은 자녀를 가진 부부에게는 당근이고 그렇지 못한 부부에게는 채찍이다. 육아휴직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가진 부부에게는 당근이며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채찍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자녀를 가진 부부들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 예컨대 육아휴직과 조기 퇴근과 같은 혜택을 주지만 이것이 오히려 주위 동료들로 하여금 저 사람 때문에 우리가 더 희생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또한 정부의 정책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도록 만들기 위해 할인 쿠폰을 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쿠폰 줄 테니 한번 구입해라는 것처럼 돈 줄 테니 아이 한번 낳아 봐와 같은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들의 바람
한국은 노력하면 행복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남들이 가진 만큼 가져야 하고 남들이 하는 만큼 하면서 살아야 불행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나라이다. 공부를 안하면 불행해지고 대학에 못 들어가면 불행해진다. 약속된 행복이 없는 나라이다. 이런 곳에서 부모들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성당도 마찬가지이다. 부부가 아이를 데려오면 모두들 이뻐하고 축복해 준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미사 중에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모두들 인상을 찌푸린다. 그들을 위해 마련된 유아실은 관리가 안 되다 보니 방음이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미사에 왔는데 오히려 눈치만 보다가 가야 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또래 부모도 보기 힘들다. 그들이라도 있으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도 할 텐데 그런 모임조차 없다. 결국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줄어드니 아이 가진 부모를 위한 혜택도 논의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유아세례가 줄어든 이유를 단순히 저출산 문제로만 넘겨 버린다. 분명 우리 가톨릭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말이다.
지난 5월 교구 가정복음화국 주최로 영아 축복 미사가 봉헌됐다. 유모차를 끌어 줄 봉사자들이 함께했고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장소도 마련했다. 미사에 참석한 부모들은 이 행사를 위해 하루 휴가를 냈지만 그들의 모습에 후회는 없었다. 아이 때문에 내 시간을 뺏겼다는 생각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설레임 그 자체였다. 가톨릭에서 이런 행사를 해 준다는 것에 대해 그저 고맙고 행복해했다. 미사 중에 우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등 어떤 돌발행동을 해도 그 누구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 하나하나가 기쁨이고 행복일 뿐이었다. 미사를 주례하시고 아이들을 축복해 주신 조환길 대주교님의 얼굴에도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아직 우리가 아이를 가진 부모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아이를 낳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가장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인 시간이 사라지고 경제적으로 힘들 수도 있고, 아이가 사춘기에 빠지면 내가 왜 저 아이를 낳았을까라는 후회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거푸집인 아이가 점점 더 나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이 모든 희생과 후회를 뛰어 넘을 행복이지 않을까. 그걸 알기에 매일 자식 때문에 힘들다는 부모들도 자식에 대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부모들의 이 믿음이 보호받고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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