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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쎄


글 이한웅 사도 요한 신부|후쿠오카교구 선교 사목

9월 순교자 성월입니다. 일본 교회는 특별히 순교자의 신앙과 정신을 기억하는 성월이 지정되어 있지 않아서 9월이 순교자 성월이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 때가 많습니다. 매년 일본에 성지순례를 오는 한국 신자 분들을 보는 일본 신자 분들은 한국 순례객들의 수와 신앙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교회가 한국 교회로부터 좋은 자극을 받아 자국의 순교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신앙과 열정을 본받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에서 신자 분들과 함께 순교 역사를 되돌아볼 때, 순교란 마치 지나간 역사의 한 장면이요 잔인하고 아픈 과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알고 그 정신을 기리는 곳에 신앙이 풍성히 자라난다는 것은 한국 교회를 볼 때 자명한 사실인 듯합니다. 한국 교회가 순교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며 본받고자 하는 태도는 일본 교회의 신앙인들에게 특히 필요한 정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쿠하시에서 2년간의 짧고 아쉬운 사목을 마감한 뒤 파견된 곳은 카시마성당과 타케오성당, 그리고 카시마 가톨릭 유치원이었습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카시마성당은 후쿠오카교구에서 신자 수가 가장 적은 본당입니다. 하지만 박해 시대에 세워진 교회(1607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모후 성당)이며 복자가 되신 두 분의 순교 사제(알론소 데 메나 나바레테 신부, 자킨토 오르파넬 퍼레이드 신부: 1622년 9월 10일 나가사키 니시자카에서 순교)가 초대 주임 신부로 계셨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본당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임 당시 카시마 성당 주일미사에 참례한 신자 다섯 분이 공동체의 전 인원이라는 사실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당의 벽과 유리창도 대부분 금이 가 있었고 아스베스트로 된 천정도 갈라져 곧 허물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인사 이동이 때마침 성주간을 앞둔 시기여서 첫 주일미사 후 곧바로 성주간 전례에 대해 논의했는데, 신자분들은 30년간 성주간을 지내지 않았고 파스카 성삼일이 무엇인지도 잊었다는 말씀에 저는 그만 아연실색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본당에는 신자 명부와 교적도 없었고, 본당의 회계도 회사원의 반년치 월급보다 적은 실정이라 망연자실했습니다.

공소보다도 작은 열악한 본당 공동체에 부임한 후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400년전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분위기가 점차 거세질 무렵, 카시마에 처음 성당이 세워졌을 때 히젠(카시마의 옛 지명)에는 약 2,000명의 신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무색할 정도로 본당 공동체에는 생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카시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레시노(카시마 관할구)에도 무명의 순교자들이 묻힌 무덤을 비롯해 총 7개소의 순교 유적이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안타까웠던 것은 후쿠오카교구의 신자 분들은 물론 대다수의 교구 방인 사제들조차 400년전 이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도, 복자 순교자가 계신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국 교회였다면 이곳은 순례지가 되어 신앙인들의 기도와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을 텐데….” 무심결에 저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한숨이 저절로 났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순교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신앙이 이 지역에서 스러져 버리지 않도록 복자가 되신 두 초대 주임 신부님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사목에 임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쎄(용비어천가 중에서)”라는 말이 있듯이 신앙에 있어서도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정신(resourcement)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드닝을 하며 배운 것 중 하나가 나무는 뿌리의 깊이와 넒이 만큼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뿌리가 자라지 못해 숨이 막혀 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점점 힘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비단 나무의 성장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뿌리를 소중히 한다는 것은 신앙의 원천과 초대 교회의 유산을 소중히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박해의 역사를 딛고 성장한 교회에 있어서 순교자들의 열정과 정신을 기억하며 되새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 교회가 일본 교회와 달리 더 크고 풍성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박해의 역사를 기억하며 신앙의 뿌리를 소중히 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비록 오랜 시간 속에서도 크게 성장하지 못해 교구 내에서 가장 작고 소박한 카시마성당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작고 소박한 공동체 안에서도 당신이 참으로 현존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자 저와 공동체를 부르고 계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 카시마에 온 이래 기적과도 같은 은총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공동체와 유치원을 위한 다목적실이 완공되어 많은 이들과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카시마의 작은 기적들에 대해서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순교 성인 복자들의 전구를 청하며, 한국 교회와 일본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