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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푸른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천주교인이요


글 황영삼 마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1) “신부님, 저…신자입니다.”, “너 종교 없다며?”, “사실 어릴 때 세례 받았습니다.”

2) “신부님, 복사 서고 싶은데 어디가면 돼요?” 저 주일학교에서 복사섰어요.“

3) “저 교리만 들어보면 안 될까요? 세례를 받을 생각은 없는데…”

4) “저 본당에서 교사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여러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한 번씩 듣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이 종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종교를 강요할까 싶어서 처음에는 경계도 합니다. 한 해에 80만 명씩 태어났던 70년대생의 어린 시절, 부모가 종교를 물려주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그 반작용 때문인지 70년대생이 부모가 되고 나서는 자녀가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도록 해야 된다며 신앙을 물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학업을 우선시에 두고 종교를 등한시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일단 종교에 큰 관심이 없고 잘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가 세상에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 모든 아이들이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우리 아이가 친구를 잘 사귀고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 우리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상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 하지만 현실의 대학교에서는 이제 혼자 살아내기를 막 시작한 순진한 아이들이 기댈 곳 없이 우왕좌왕하며 세상 적응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은 상처받고 외롭고 힘겹게 자신의 20대 초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외롭고 힘겨운 아이들의 마음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들입니다. 일반 개신교인 것처럼 시작해서 젊은 친구들에게 접근합니다. 학교 안에서도 활동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가져갑니다. 특히 1학년들은 아직 순진하고 어려서 쉽게 정보를 내어 주고는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시간에 종교가 무엇인지, 사이비 종교가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 주고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때 고려 해야 할 요소들을 알려줍니다. 사이비 종교의 포교활동이 사실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 스스로가 구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우리는 뭐 하고 있나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천주교는 뭐 하고 있나?

이미 한국 사회의 구조와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우리가 비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 교회는 늙어갈 것이고, 유럽 교회들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젊은 신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젊은 신자들도 1년에 한두 번 고향 갈 때 들리는 성당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울한 현실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한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지에 관해 더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기 때문에 세상을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처한 미래는 비관적이지만 그 비관적인 시각이 객관적인 시각을 열어줍니다. - 비관론자처럼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꿈꾸라 - 어두운 미래를 인정하게 되면 그 안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뭐 하는데?” 누가 학교에서 일하는 신부들에게 물었습니다. “ …이런저런 일들을 합니다.”, “그냥 놀아 주는 거네.”, “그렇죠.”, “그럼 세례는 좀 받나?” 이전에는 잘 모르겠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1년에 30명 정도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학교 구성원들 수에 비하면 참 적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수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진심으로 그들을 존중해 주고 나이가 많지만 마음을 나눠주고 대화해 주는 것, 아직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살아보지 않은 우리 아이들, 학생들에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법을 보여 주고 함께 살아주는 것, 그런 것들이 오히려 가난한 이들 앞에선 우리의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들에게 정말 ‘신’이 필요할 때, 인생에서 참 겸손해지는 순간이 올 때, 그들의 봄 같은 대학교 시절을 기억하며 우리 신부님들을 기억해 준다면 그들은 이미 천주교인이 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세례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 사회와 함께 지나치게 급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중에 완벽했던 시간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그 비대했던 고성장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진통의 시간을 겪고 있듯이 우리 교회도 이 시간들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명확해지는 시기를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더 본질에 가까운 교회, 외로운 인생길에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교회,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교회, 그런 교회로 거듭나고 있을 때 우리를 만나본 젊은이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와 우리와 함께 천주교인임을 고백하며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