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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들
제 마음을 다하여 주변에 불편하신 분들을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


글 이원순 아녜스|죽전성당 사회복지위원

 

겨울, 제법 날씨가 추울 때였습니다. 사회복지 봉사를 하면서, 무심히 지나던 일상을 저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느 수요일 오전 미사,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 어르신이 계셔서 옆에 앉았습니다. 그날부터 수요일, 금요일 미사 때는 옆에 앉아 매일미사 책도 펴드리고, 성가 번호도 알려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얼굴이 조금 익을 무렵, 만원짜리 한 장을 들고 성전을 향해 저기에 내는 날이냐고 물으시는 것 같아 귀에 대고 오늘은 수요일이고, 봉헌은 주일날에 하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레지오가 끝나고 사회복지위원장에게 혹시 아시는 분이냐고 물었더니 수녀님 추천으로 알아보았는데, 형편이 어려우신 분은 아니고, 자식이 여러 남매가 있지만 멀리 살아 가끔씩 온다고 했습니다.

87세의 마리아 어르신은 치매 초기에 귀가 어두우시고, 지팡이 없이는 거동이 힘드십니다. 어떻게든 도와는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금요일 미사 후 부축해 드리면서 “어르신, 제가 평화자리에서 커피 타 드릴게요.”라고 말을 건네며 다가갔습니다. 어르신은 대답없이 빙긋이 웃기만 하셨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와 다시 말을 건넸습니다. “어르신 댁에 놀러 가도 될까요?”라고 했더니 “우리집에 올라꼬? 집이 엉망인데…” 하시면서 언제 올 거냐고 하시길래 다음주 월요일에 가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셔서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저희가 어르신 댁을 방문해서 청소, 빨래도 도와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릴게요.”라고 의향을 여쭈었더니 처음엔 싫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다 하신다고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르신, 우리는 하느님의 형제자매여서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동생 같고, 딸 같이 생각하시면 돼요.” 한참 설득 끝에 승낙을 받고 월요일 오전 10시까지 댁으로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사회복지위원장과 위원들과 함께 상의를 했습니다. 집안 사정을 모르니 몇 사람이 서로 나누어 해 보자고 약속을 하고, 월요일 오전 9시 30분 성당에 모여 어르신께 전화를 하니 받지 않으셨습니다. 수차례 시도 끝에 전화를 받으신 어르신은 목욕탕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디 목욕탕이냐 여쭤보았더니 저도 아는 동네 목욕탕이었습니다. 목욕탕으로 가서 어르신을 댁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사회복지위원회에서 목욕 바구니, 걸레, 수건, 앞치마 전부 준비를 했는데, 목욕시켜 드린다는 말이 많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 댁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마스크를 착용했는데도, 온 집안에 냄새가 대단했습니다. 어르신 혼자 성전에 앉아 계셔도 그 냄새가 진동한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저는 옆에 앉아 있어도 몰랐습니다. ‘그래, 우리가 도와드려야지’ 했지만 어디서부터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야 될 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청소기를 밀고, 걸레로 닦고, 주방 싱크대 청소를 하는 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어르신께서 전화를 받으시더니 “성당 사람들이 청소해 주러 왔어.”라고 하시길래 누구시냐고 여쭤보았더니 따님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화 좀 바꿔 달라고 하고, 우리가 방문한 이유를 말씀드렸더니, 따님은 ‘고맙고, 죄송하다면서 건강보험공단에 요양 등급 신청을 했는데, 센터에서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해서 그냥 있다.’고 하시면서 이번 주말에 형제들이 와서 냄새나는 것들 다 버리고 정리를 할 거라면서 그냥 가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던 청소를 마저 하고, 간식으로 떡을 좀 사드리고 왔습니다.

수요일 미사에서 뵌 어르신은 여전히 냄새가 났고, 제 마음은 더 조급해져서 요양등급은 언제 나오는지 궁금해 하며 함께 평화자리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은 서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고, 저는 조금만 기다리시면 해결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다 같이 연세드시고, 교우이신데, 저렇게 배려를 못 하시나 싶어 제가 참 서운했습니다. 몇 번의 안부 전화는 동문서답이었지만 잘 계신 것을 확인하며 2주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낯선 분이 받으시길래 누구시냐고 여쭤보았더니, 도와주러 오신 분이라고 하셔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이튿날 댁에 방문했더니 집이 너무 깨끗해져 있고, 마리아 어르신도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면서 제 이름을 여러 번 알려 드렸는데도 여전히 모르십니다. 요즘은 옆에 앉으며 인사를 드리면 ‘우리집에 청소해 주러 왔던 성당 사람이제?!’ 그러십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성전에 앉아 계셔도 이제는 누가 냄새난다고 눈총 주는 일도 없고, 제 마음이 너무 기쁩니다.

가끔씩 안부 전화 드리고 댁에 방문하여 말동무도 해 드립니다. 한참 장마에 날씨도 너무 덥고, 수요일, 금요일 미사에 안 오셨길래 댁을 방문했더니 많이 아팠다며 이제는 기운이 없어 성당에 못 가겠다 하십니다. 어르신 댁을 방문하면 저도 모르게 밥솥을 열어 보고 냄비도 열어 봅니다. “어르신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라며 여쭤보면 아무거나 잘 드신다고 하셔서 잠깐 계시라고 하고 연어 초밥을 포장해 와서 차려 드렸더니 맛있게 드셨습니다. 몸이 많이 아프면 집에서 기도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주일날 성당에 오셔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8월 무더위 속에서도 축일인 어르신들의 각 가정을 방문해 축일 잔치를 해 드렸습니다. 사진을 찍어 드리면서 환하게 웃으시라고 해도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고맙게 해 주겠니…”라고 하시면서요. 저희 본당 사회복지는 어르신들이 원하시는 대로 큰 것은 아니지만 드시고 싶은 것, 필요한 생필품을 한 달에 두 번 나눔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제가 마리아 어르신 옆에 앉으면서 인사를 드렸더니, 다정하게 “왔어?!” 하시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가방에서 베지밀을 꺼내 주십니다. 저를 기억하신 마리아 어르신에게 감사하며 저도 모르게 감격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는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 마음을 다하여 주변에 불편하신 분들을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