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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시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글 이재근 레오 신부|월간 〈빛〉 편집부장 겸 교구문화홍보국 차장

 

불혹(不惑)

불혹은 나이 40세를 이르는 말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서 사십이불훅(四十而不惑),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게 되었다.’는 말에서 나왔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불혹은 다르다. 책임질 것이 많다 보니 사소한 것에도 휘둘린다. 단지 그렇지 않은 척할 분이다. 흔들리고 있지만 중심을 잡고 있는 척한다. 그 이유가 아름답지만 슬프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가족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아닌 척 해야 할 나이, 40대. 그들은 위로를 필요로 한다.

 

버터 내다

40대의 삶은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압박 아래 도전을 망설이고 책임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현 상황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불안하지만 그 불안함을 들켜선 안되고 아이들과 배우자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동안 참아왔던 불안감과 두려움을 고작 술 한 잔에 담아 조용히 마신다. 그리고 다음 날 이리저리 휘둘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들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는 시간에 끌려 다닌다. 그래서 하루를 보냈다가 아니라 버터 냈다고 말한다. 내일도 버터 내야 할 하루가 있다는 것은 잠시 잊고 오늘 하루 버터 냈으면 된거라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징크스

주일이 되면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간다. 가족 중 누군가 성당 가는 것을 귀찮아하면 혼을 낸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성당에 끌고 간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성당에 앉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위로를 받고 싶지만 또 다른 의무를 받아 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나가지 않으면 흔들릴까 봐 불안해 한다. 그들에게 신앙은 어쩌면 하나의 징크스가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벗어나고 싶지만 불안해서 벗어날 수 없는 징크스. 그들의 신앙생활은 위로와 희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안 하면 벌 받을까 봐 두려워서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 두려움, 징크스, 괜찮은 척, 이러한 단어들이 40대를 대표하는 말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언젠가는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그들, 그래서 그들은 불혹이 맞다.

 

불혹, 화이팅

오늘은 대한민국의 모든 불혹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다. 그들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닫기를, 오히려 당신들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이 웃을 수 있음을 알게 되기를, 그래서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웃을 수 있기를, 나 역시 불혹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제로서 기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