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로사리오 성월을 맞이했습니다. 묵주 기도는 제가 구렁에 빠질 때마다 언제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준 소중한 기도입니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로사리오를 돌리며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는데, 돌이켜 보면 성모님께서는 로사리오 안에서 저와 늘 함께 기도해 주셨고 그 기도는 하느님께서 합당한 때에 맞갖은 방식으로 항상 제게 응답해 주셨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겁도 많고 탈도 많은 저는 지금도 도움이 필요할 때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묵주 반지를 굴립니다. 감사에 인색한 저의 묵주 기도가 가끔은 성모님께 떼쓰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저와 세상을 지탱해 준 놀라운 힘이 깃든 기도임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올해의 로사리오 성월에는 청원 기도보다는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를 바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해 드린 대로 카시마성당은 ‘로사리오의 모후’성당입니다. 일본에서 키리시탄에 대한 박해가 막 시작된 무렵인 1607년 10월 7일(로사리오의 성모 축일)에 설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금교령으로 인해 1613년 10월 8일에 성당은 파괴되었지만, 1957년 재건립된 성당은 같은 해 10월 7일 다시금 로사리오의 성모께 봉헌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후쿠오카교구 내에서 공소를 포함해 신자 수가 가장 적은 본당입니다. 카시마에 온 저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숨은 신자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자 명부와 연락처가 남아 있지 않아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해 겨우 알아낸 주소로 편지를 보냈지만 절반 이상이 주소 불명이나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었습니다.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저는 문득 공동체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로사리오의 모후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문’을 만들어 매주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대여섯 분의 신자와 함께 공동체를 위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도의 열매는 하느님께서 합당하다고 여기실 때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이어 있습니다. 동시에 열악한 본당 재정을 채우기 위해 헌금을 모금했고, 누액이 발생한 성당 조명을 뜯어내 직접 LED 조명을 설치하는 등 본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제 가슴에 파고든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카시마와 타케오에서의 사목 모토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본당에 신자 수가 적다고, 재정이 열악하다고, 유치원에 원생 수가 적다고 불평하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초대 교회의 모습은 훌륭한 성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공동체 구성원 수가 굉장히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작고 소박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 후 머지않아 공동체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본당 신자들이 매주 본당을 청소하고 화단을 가꾸는 등 본당을 위해 마음을 쓰기 시작했고, 그 노력이 열매를 맺는 듯 십수 년 동안 냉담한 가족들이 공동체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삼십 년간 평일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성당에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이 생겨났고, 입문 성사를 받기 위해 예비신자가 찾아오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저 또한 평일미사에 오시는 단 한 명의 신자를 위해 정성을 다해 미사를 준비하고 봉헌하는 등 내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번은 젊은 사제가 먼 시골 본 당에 있는 것이 아쉽다며 후쿠오카의 신자들이 주교님을 찾아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에 주교님께서도 직접 카시마까지 오셔서 제게 후쿠오카 시내의 본당으로 이동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이 작은 공동체에 사제가 파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먼 길을 오신 주교님께 죄송했지만 카시마와 타케오를 위해서 조금 더 사목하게 해달라고 제가 오히려 청하게 되었습니다. ‘둘이나 셋이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고무시켰습니다.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카시마성당에는 다목적회관이 설립됐고 익명의 기부자가 유치원을 위해 이천만 엔의 거액을 기부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로사리오의 성모님과 복자가 되신 초대 주임신부님의 전구하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적인 큰 변화에 시선을 두기 보단 오히려 주님께서 크고 거창한 것으로부터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소녀 마리아,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작은 고을 베들레헴, 유년기를 보내신 시골 마을 나자렛, 공생활을 시작하신 변두리 갈릴래아, 예수님께 불림 받은 내세울 것 하나 없던 제자들…!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는 늘 작은 것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듯 작은 마음이 모여 하느님 나라가 된다는 것을 시골 본당의 소박한 기적들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간간히 유치원의 학부모회와 선생님들,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다목적실에 모여 전을 부쳐 나눠 먹거나 다과회, 음악회를 통해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 안에서 시나브로 하느님 나라가 피어나 자랍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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