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10일(화) 노환으로 선종한 양 수산나 여사의 장례미사가 12일(목) 오전 10시 대봉성당에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되었다. 조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양 수산나 씨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때 방학을 맞아 프랑스의 어떤 캠프에 참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 교회사를 듣고 매우 놀라위하며 감명을 받아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며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우리나라에 오셔서 평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참으로 기쁘게 하시며 사셨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하느님께 가신 것”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1959년 제7대 대구대교구장 故 서정길(요한) 대주교의 초청으로 대구땅을 밟은 양 수산나 여사는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영어와 불어를 가르치며 경북대학교에도 출강해 영어를 가르쳤다. 또한 고아원에서 나와 거리를 헤매는 불쌍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가톨릭여자기술학원(1962년)을 설립했다. 이는 현재의 가톨릭푸름터의 전신으로 양 수산나 여사는 초대 원장을 지냈다. 평신도 선교사로서 대구·경북지역 사회복지사업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공헌한 양 수산나 여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편에서 봉사하며 순명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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