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을 처음 뵌 날 아무도 없는 빈 집터 처마밑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계신 외로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환한 미소로 맞으며 손을 꼭 잡아 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르신께서는 가난하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자식에게 해 준 게 없어 미안해 하셨고 그 때문인지 멀리 사는 자식들에게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르신은 약간의 우울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감정 기복이 있어 어떤 날은 좋은 마음을 가졌다가 또 어떤 날은 안 좋은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을 흔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헤아리던 중 ’한글, 숫자 등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어르신의 삶은 우리가 보내는 일상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여생 동안 도움이 되고 배움의 기쁨을 알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삶의 활력소가 되길 바라며 한글과 숫자를 가르쳐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한글, 숫자 등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자료를 모아 읽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 달력을 보며 그림과 매치하는 글자 인식부터 숫자를 세는 것까지 조금씩 공부한 결과 집안에 있는 물건은 거의 다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글자 쓰는 것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 조금씩 규칙적으로 하는 걷기 운동을 통해 다리 힘도 기르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햇볕을 쬐면서 우울했던 마음도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어르신께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잘하고 계시다 는 말씀을 드리며 마음을 다독여 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나쁜 마음이 들 때마다 제가 한 말을 생각하면서 나쁜 생각을 떨치고 있다며 제가 오는 날만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좋아지기까지 순간순간 고비가 있었지만 어르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웃으며 마음을 나누어 드렸더니 마음을 열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를 편하게 생각하시며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오래된 친구처럼 여깁니다. 어르신이 남은 여생 동안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하며 노인 자살률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우리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를 지금처럼 살게 해 주신 분들이지만 외롭게 소외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우리 생활지원사 한 명 한 명의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 헌신으로 나아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일에 동참하고 앞장서겠습니다. 지금처럼 어르신 곁에서 오래된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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