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여는글
500호


글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1983년 5월, 그 시간에 ‘빛’은 탄생했다. 41년이 지난 지금, ‘빛’은 어엿한 월간지로, 또렷한 신앙 길잡이로 제 모습을 가꾸어 간다. 시간이 흘러 500호를 만들고 있는 지금, 시간이 가차 없이 흐르는 일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무엇을 기념하는 시간은 흐르는 모든 시간을 꼭 움켜쥔다. 1983년 5월의 시간은 2024년 12월의 시간을 꼭 붙들고 묻는다.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어떻게 다르냐고, 그 시간에 다짐했던 소중한 상상들이 지금 이 시간에 어떻게 이루어졌냐고…. 시간들이 흘러가도 기념해야 할 그 시간은 꼿꼿이 같은 자세로 끊임없이 묻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지난 41년은 매번 반복되는 일들로 매 순간이 서로 닮아간 시간이어서 궁극에는 하나의 시간으로 승화한 것일지 모른다. 매달 15일에 다음 달의 원고를 받고 매달 말일까지 그 원고들을 검토하고 수정하며, 다음 달 10일에 인쇄하고 15일에 발송하고…. 이 일들은 시간의 변화에 그리 화답하지 않는다. 묵묵히 하나의 시간 안에 온전히 집중하고 집중한만큼 수많은 시간들은 서로가 낯설지 않아 마치 ‘오래된 미래’인냥 그렇게 서로를 맞이하고 함께하고 또 떠나보낸다.

그러므로 어떤 시간을 기념한다는 건, 혼자만의 일이 아닌 서로 다른 시간과 그 시간에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무한한 연대와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는 엄숙한 일이 된다. 지금 나는 1983년의 그와 하나되어 ‘빛’을 비춘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500호의 시간을 미리 상상하며 그 시간의 ‘우리’를 끌어안는다. 너무나 쉽게 변하는 시간과 공간의 물질성은 ‘빛’의 시간들 안에서 변함없는 것들이 있음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켜낼 수 있다는 단단한 결심을 제 속살 안에 감추고 있다.

 

‘빛’을 만들고 다듬고 읽고 나눈 41년의 시간들 앞에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다가올 시간 앞에 ‘빛’이 여전히 찬란하기를 그 시간의 벗들에게 바라고 또 바란다. 우리 믿는 이의 시간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그러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