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속에서도 오직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사는 분들이 계신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사시는 분들이 있기에 그분의 말씀이 오늘까지 이 세상의 모든 이들 안에 존재하는 커다란 이유일 것이다. 여기 ‘성실, 믿음’으로 평생을 하느님과 함께 하신 분이 있다.
사제가 된다는 것
초겨울을 알리는 추위가 시작될 무렵, 금테 안경의 희끗한 머리칼, 올곧은 시선의 이창호(안드레아, 72세)신부님을, 대구시 서재의 한 아파트촌에서 만났다. 1959년 3월 19일에 사제서품을 받으신 후, 은퇴하실 때까지 40여 년의 생을 신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사신 신부님.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말씀 외에 말씀을 아끼시는 이창호 신부님은 신자들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시지는 못했지만, 행동 하나 하나에 사랑이 묻어 있었다.
이창호 신부님은 1929년 8월 30일에 경기도에서 태어나 9세 되던 해에 온 가족이 대구로 이사와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시절 성경책과 묵주가 뭔지는 몰랐지만 그저 좋아서 항상 가까이 두고 생활하셨던 신부님.
3대에 걸쳐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독실한 신자집안에서 태어나셨다. 사제의 길을 걸으신 작은 할아버지, 수도자이신 이모님 그리고 당신 자신은 남다른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다고 말씀하신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신앙은 한번도 당신이 사제가 아닌 다른 길은 생각하지도 않으셨다.
그때 그 시절 품었던 하느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사제가 된 후에도 신부님의 모습에서 감히 지워지지 않는다.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신학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부에 정진하셨단다. 때로는 힘들어 지치고 쓰러질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 선명히 들리는 “내 아들아, 일어나라.” 그 말씀에 메말라가는 영혼과 육신은 평화를 되찾곤 하셨다.
한 평생을 본당 사목활동에
신부님의 일상생활은 기도로 이루어진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틈만 나면 기도를 올린다. 신앙심이 약한 신자들과 본당을 위해, 교구의 앞날을 위해... 사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신학생들, 매번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위한 기도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창호 신부님은 59년 하양성당 주임신부로 사제의 첫 발걸음을 내딛은 후 99년 5월 7일 은퇴하실 때까지 ‘솔선수범’이라는 넉자의 말에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본당활동에 힘쓰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부님의 개인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고민있는 신자들에게는 상담자로,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말동무(?)로, 예비신자들에게는 교리교사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모든 이를 대했다. 또한 신자들에게 무엇을 지시하시기 보다 손수 치우는 모범을 보이셨다.
신부님의 본당 사목활동 중 기억에 남는 성당을 여쭈니 금호성당을 꼽는다. 시골 성당인 금호는 변변한 건물이 하나도 없어 창고를 개조하고 초가집을 이용해(지금의 시몬의 집 터) 사무실과 성당으로 사용했고, 사제관 시설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 겨울엔 연탄 가스를 들이마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죽지 않을 만큼만 마셨지.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현기증에 목이 컬컬함을 느꼈는데 그것이 연탄가스 때문인지도 몰랐네, 그래도 하느님이 고생하신다고 생각하시는지 병원에 갈 만큼은 아니었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면 금세 낫던 기억이 나네.”라고 하시며 신자 수 당시 신자 수는 약200명이 전부였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은 2000명과 맞먹었다며 흐뭇해 하셨다.
지금도 주일이면 고령에 있는 박곡공소에 미사를 집전하러 가신다. 본당에 계실 때는 시간이 없어 책이나 다른 곳을 가볼 여유가 없었다고 하시는 신부님. “이제는 사회책(신부님이 읽고 계신 『태백산맥』이라는 책을 이렇게 말씀하셨다.)도 읽고, 난도 키우며 오후에 시간날 때마다 등산을 한다네.” 말씀하시는 내내 쉰다는 것 자체에 커다란 미안함을 담고 계셨던 이창호 신부님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월에 맞춰 우리가 따라가는 것 보다 서서히 발맞추어 따라가는 것이 이롭지 않겠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신앙생활’을 강조하시며 신부님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성직자와 그 길을 가고자하는 이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이제 2002년 새해를 맞아 우리 마음에 쌓아 놓았던 모든 앙금과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 앞에 깨끗하고 겸손된 마음과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후에도 이어질 이 다짐은 신부님의 삶을 이루는 본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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