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는 교황님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회의실 입구에 걸려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친필 서명입니다. 2014년 방한 기간 중 교황님께서 이곳을 찾으셨을 때 남기신 서명인데, 아주 작은 글씨로 당시 화제가 되었지요. 커다란 크기의 방명록 한구석에 적힌 ‘Francisco(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사람들은 그 ‘깨알 서명’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좋아합니다. 유명 인사들의 화려한 서명에서 볼 수 없는 어떤 울림이 교황님의 작은 서명에서 느껴지는가 봅니다.


우리는 흔히 ‘큰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도 큰 집이 더 좋고, 차도 큰 차가 더 좋고, 교회도 커야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것에 집중하고 더 큰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수와 크기가 주는 힘은 분명히 있고, 규모가 클수록 장점이 많습니다. 큰 목표를 세울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것이 언제나 좋은 면만 가진 것은 아니지요. 예를 들어 오늘날 생태 위기는 인류가 큰 것만을 쫓아 살았던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높은 빌딩, 더 넓은 도로, 더 커다란 물건들을 갖게 되었지만, 그만큼 황폐해진 생태계와 가속화되는 기후변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동의 집 지구는 누구에게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될 만큼 큽니다. 하지만 너무 커져 버린 인간의 욕망을 견딜 만큼 무한하지는 않습니다.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에는 모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고 소박한 것의 가치에 다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후 위기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너무 커져 버린 결과이기에,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자연에 적게 부담을 주도록 작아져야 니다. 그렇게 우리가 각자의 ‘생태 발자국’ 크기를 줄일 때, 지속 가능한 미래는 가능할 것입니다. 지구 공동체의 크기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작아질 때, 공동의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영성은 커지는 영성이 아니라 ‘작아짐의 영성’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렇다고 큰 것 자체가 나쁘다거나 작은 것이 큰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작은 것의 가치를 알아보고 작은 것을 소중히 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작은 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지요. 작은 것이 자라서 크고 중요한 것이 됩니다. 작은 물방울들과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살기 좋은 땅을 만듭니다. 예수님도 작은 것들을 작다고 하찮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겨자씨와 같은 사람들인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더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인간의 손바닥 위에 작은 빵의 크기로 놓일 만큼 작아지셨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 시작할 줄 압니다. 지구를 위한 작은 발걸음의 힘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후변화처럼 거대한 문제를 극복하는데 개인의 실천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국제적 차원의 변화도 결국 개인의 작은 행동이 모여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비닐봉지 한 장 덜 쓰고 텀블러 사용한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변화를 가져오는 ‘겨자씨’ 가 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지구를 위한 작은 물결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변화의 파도를 일으켜 낼 것이란 확신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작은 무언가를 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며 어떻게든 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작은 한 사람의 역할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다고 해서 불편하게 느끼지 않고,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지구 공동체를 위한 ‘자발적 소박함’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렵지만 무언가라도 해 보려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샘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우리네 세상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작은 사랑과 희생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다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마주합니다. 그렇게 우리 주님은 작은 존재로 세상에 오셨음을 잊지 맙시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작아지신 하느님처럼, 우리 역시 그분과 이 창조 세계를 위해 좀 더 작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것 속에 깃든 가치를 바라보고,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과 가까워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바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그 작은 서명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래요. 정말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 그동안 ‘친교의 해를 위한 생태영성’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 주신 송영민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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