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호스피스란 완치 불가능한 말기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편안히 맞이하도록 도와줌과 동시에, 그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는 활동을 말한다. 나아가 가톨릭 내에서의 호스피스의 의미는 그들의 신체적 간호뿐 아니라, 지난 삶에서 마음의 고통으로 남아있는 미움과 갈등 등을 신앙을 통해 용서와 화해로써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 이것이 호스피스 봉사자로서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드러나진 않지만 이렇듯 소중한 일을 3년째 해오고 있는 신윤임 씨를 가톨릭 의료원에서 만나보았다.
아픔의 열매가 호스피스 봉사로 이어지기까지
아파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잘 아는 것처럼 신윤임 씨 역시 호스피스 봉사자가 되기 전에 많은 아픔을 겪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7년째 목 아래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워지내는 오빠, 그리고 그녀 역시 10년 전 대장질환으로 1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예전에 아플 때 여러 병원에 다니다가 가톨릭 의료원에 입원했어요. 대장질환이 심해져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실 벽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덜컥 겁이 나길래 예수님께 매달렸지요. 그런데 십자가의 예수님께 매달리는 순간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그 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퇴원하면 가톨릭 교리를 한번 배워봐야겠다고. 단순히 교리를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예비자교리반에 들어가, 어렵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로는 아팠던 기억도 어느덧 잊혀지고, 사는 게 바빠 주일미사도 여러 번 참여하지 않았다고.
그러던 그녀가 8년 동안 해오던 숯불갈비집을 동생에게 넘겨주고 집에서 쉬고 있을 즈음, 우연한 기회에 호스피스 관련 신문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호스피스 봉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그녀는 지원을 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할 때는 환자들의 고통에 가슴이 저며와 도망가고 싶었다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눈빛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 알게 된 그녀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현존하는 하느님을 체험했단다. 이제 그녀에게 죽음은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온 듯 했다.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환자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었어요. 호스피스가 돌봐준다는 건 환자 스스로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저희들이 다가가면 싫어하세요.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받아 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녀는 호스피스 활동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이 가까운 환자들을 돌보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죽음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본다. 더군다나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자신도 변화하고 가정의 분위기도 좋아져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돌볼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가족의 입장처럼 필요 이상의 감정 이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살아가며 그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언제까지 죽음에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돌보던 환자가 떠나고 나면 또 다른 환자를 만나는 것이 호스피스 봉사자의 의무이므로...
환자에게 다가가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일이다. 아픈 오빠의 이야기며 두 차례 수술을 받았던 자신의 이야기와 자궁암으로 고생하셨던 시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환자들은 이 호스피스가 자기와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님을 알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말해 달라고 하니 신윤임 씨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위암 말기의 환자였는데 떠나시면서 눈을 기증한 분이 있으세요. 처음에 찾아갔을 땐 쳐다 보지도 않으셨어요. 그래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라 듣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제 이야기를 해드리며 몇 날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사람을 끌어당기던 그분의 커다랗고 예쁜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신윤임 씨는 그분을 조용히 떠올렸다. 조금씩 그분과 가까워지면서 신자가 아닌 그에게 자신이 믿고 있는 하느님 이야기를 살며시 꺼내며 기도서를 선물했다. 그리고는 미사에 한번 모시고 갔는데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시더란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먼저 미사에 가자고 제안했고, 성격이 불같던 그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밝은 웃음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고, 많이 온화해진 그를 보며 가족을 비롯한 주위 여러 사람이 놀랐다. 하느님을 알게 된 후 의연하게 떠나는 길을 준비하던 그는 대세를 받고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삶의 자리에서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에 봉사를 하지만 환자가 위급할 때면 자주 병원을 찾는다. 또한 돌보던 분이 돌아가시면 장례까지 다 지켜봐야 되고, 평소 여기저기 호스피스 관련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이런 그녀를 든든히 후원해 주는 사람은 역시 가족이다. 듬직한 남편과 대학교에 재학 중인 남매를 둔 그녀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많이 느꼈다. 8년 동안 장사해서 번 돈을 주식투자로 다 날리고 나서 돈이 흐르는 물과 같음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아무런 욕심이 없다. 얼마 전에는 타지역 학교에 재학 중인 딸을 위해 꽃과 케이크를 선물로 보냈단다.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애정 표현에 어색해 했을 그녀. 예전엔 자녀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간섭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릴 뿐이다.
처음에는 죽음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던 환자들도 하느님을 알고 나서는 지나온 삶에 대하여 용서받고 용서하며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럴 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신윤임 씨. 호스피스 봉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애쓰는 그녀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분들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 죽는 것이 무엇이 두렵습니까? 내가 죽으면 하느님과 내가 그 동안 돌보았던 고아들 그 밖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게 뭐가 두렵습니까? 오히려 나는 그 순간이 기다려집니다. -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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