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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씨앗을 뿌리는 선교


글 이한웅 사도 요한 신부|후쿠오카교구 선교 사목

월간 〈빛〉 징검다리를 시작한 지 어느새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일본 선교지에서의 저의 소박한 이야기를 읽어 주신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선교 사제로서 부족하기 그지없는 저의 작은 나눔이 가깝지만 먼 이웃나라 일본 교회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12월의 징검다리를 놓아보고자 합니다.

지난달의 징검다리에서 말씀드린 대로 마지막 징검다리는 일본에서 유치원을 겸임하며 느낀 것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일본에서 사제품을 받은 뒤 지금까지 저는 본당과 유치원에서 근무하며 선교 사목을 이어 왔습니다. 인사 발령을 받고 파견된 본당에는 가톨릭 유치원이 부속되어 있었는데 유아교육 현장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지역 사회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선교의 장이라고 생각했기에 시간에 쫓기면서도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유아 교육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본당 사목과 교구 청년 사목에 시간을 투자하려 할 때마다 유치원 업무에 발목을 붙잡히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닌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원장으로 또 원장으로 수년간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여 갈수록 유아기가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고,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기에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마음에 복음적 가치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업무 중에 사제로서 기쁨을 느끼는 시간은 매주의 종교 교육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경 속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마치 스펀지마냥 말씀을 쏙쏙 잘 받아들입니다. 가끔씩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예리한 질문 공세에 난감할 때가 있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여 잘 듣습니다. 아이들은 듣기만 할 뿐 아니라 들은 것을 곧장 실천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키가 작은 당번인 친구를 도와 교보재와 급식을 함께 나르는 모습을 보면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분명히 싹을 틔워 자라고 있다고 느낍니다. 기도하거나 명상을 할 때에도 아이들은 눈을 꼭 감은 채 두 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아서 진지하게 하는데, 성당에 와서 성체 앞에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어른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숨기는 어른들과는 달리 솔직하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며, 때론 울고 떼쓰고 쉽게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곧장 뉘우치고 반성하고 또 쉽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화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유아기의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보다 그래도 복음적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아기의 아이들이 저보다 더 하느님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순박한 아이들이 하느님과 이웃과 세상을 향해 겨자씨와 같은 마음을 하루하루 키워 가는 가톨릭 유아교육 현장이지만 유치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한국 가톨릭 유치원 보육원의 실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 교구 내의 가톨릭 유아교육 시설은 대략 네 부류로 문부과학성(교육부) 관할인 종교법인 유치원과 학교법인 유치원, 그리고 후생노동성(보건복지부) 관할인 보육원과, 유치원과 보육원이 병합된 닌테이 코도모엔(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저는 종교법인 유치원에 2년, 그리고 현재 학교법인 유치원에서 5년째 근무 중입니다. 종교법인은 교구장 주교님이 이사장이기에 유치원 운영도 교구 내에서 참사회와 원장이 함께 결정할 수 있지만, 학교법인 유치원은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아 이사장이 따로 있고 의사 결정 기관인 이사회의 구성원도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인이 포함되어 유치원의 운영과 이사회와의 소통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는 작금의 현실에 한두 살밖에 되지 않는 아기를 주말에도 맡길 수 있는 보육원을 선호하는 학부모가 늘어나 가톨릭 유치원의 원아 모집은 예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유치원도 보육원처럼 이른 아침 시간부터 저녁 시간까지 돌봄 교육을 해야 그나마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기에 직원들의 부담도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속한 학교법인 이사회는 가톨릭 유치원의 장래성을 “수익성”으로 환원해 생각하고 있어 회의에 갈 때마다 회의감마저 느낄 때가 많습니다. 분명 처음엔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복음 선교의 사명을 위해 시작된 가톨릭 유치원일 텐데, 어느새 그 사명은 온데간데없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숫자”만 논의되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관리직인 원장 업무는 여러모로 머리가 아프지만 사제로서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제가 해야 할 바를 깨우치게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나는 아이들 마음에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다.’, ‘현장에 오지도 않는 어른들이 책상에 앉아 숫자 놀이를 하고 있을 때에도 아이들 마음 속에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뿌려지고 시나브로 싹을 틔워 자란다.’, ‘일하지 말고 사랑하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혼란한 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제게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사제직무를 수행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유치원 원장까지 겸임하는 건 오바야.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세례를 받는 아이들이 나오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 유아교육은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뿌려진 씨가 자라서 세상 안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제가 있었던 본당에 자발적으로 찾아와 교리를 공부하고 세례를 받으신 분들 중에는 가톨릭 유치원 졸업생이 제법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에 알맞은 때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세례를 받는 신자의 ‘수’가 늘어나야 선교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의 복음화(Evangelization)가 선교라고 한다면, 비록 신자 수가 극적으로 늘지 않더라도 하느님 나라를 위해 씨를 뿌리는 노력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의 선교가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이고 우리가 그 도구(Instrumentum)라고 할 때, 어쩌면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나의 겨자씨와 같은 노력을 단지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태13,31) 하느님께서 작고 소박한 것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일본에서의 제 소임을 마칠 때까지 겨자씨와 같은 노력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 그동안 징검다리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 주신 이한웅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