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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놓는 사람들
아름다운 그대들에게


글 이은남|대구서구시니어클럽 사회복지사

 

2021년 8월 나는 41살에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한 기념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운전면허증 다음으로 많은 자격증이라 괜한 짓 하지 말라고 했지만, 원래 마음 먹으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성격이라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며 사이버 교육원에 덜컥 등록을 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같이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다녔던 선생님께서 생활지원사에 지원해 보라고 했다. 자격증이 나오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했고 바로 취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잠자고 있는 자격증은 운전면허증 하나로 만족하자는 생각에 졸업예정자로 원서를 냈다. 그런데 원서를 작성하면서 무언가 이상했다. 바로 내가 작성한 원서가 복지관이 아니라 시니어클럽 원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시니어클럽에 노인 일자리 사업 사회복지사로 채용이 되었다.

내가 담당하는 사업단의 어르신들과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 받다가 대면 교육 일정이 잡히면서 어르신들과 첫 인연이 만들어졌다. 나는 2개의 사업단인 노인교통안전지킴이와 자전거보관대지킴이를 담당하고 있다. 첫 교육 날 40명씩 두 타임으로 나누어 어르신들을 만났다. 우리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정겨운 분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봐 주셨다. 첫 교육이 무사히 끝이나 너무 좋고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두 번째 교육 때는 혼이 나가 버렸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다 보니 귀가 잘 안 들리시고, 목소리가 크고, 또 통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두 번째 교육을 끝낼 수 있었다. 파김치가 된 나를 보고 선생님들이 걱정을 하셨다. “이분들을 잘 이끌어 가야 할 텐데… 이 웃기고 슬픈 현실을…” 나는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렇게 전쟁과 같은 1월이 지났다. 2월이 시작될 쯤 사업단 활동 점검을 다녀왔다. 암행 시찰을 다녔는데 베테랑들은 아주 멋지게 활동을 하고 계셨고, 올해 처음 참여하신 어르신들은 선배 어르신들의 지도 아래 신입생 티를 팍팍 내고 계셨다. 가끔 꾀를 부리시는 어르신들께는 조용히 다가가 “어르신, 시니어클럽에서 나온 노인교통사업담당자입니다. ”라고 하면 어르신들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딴짓을 한 게 아니고…” 하시며 어린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슬쩍 가서는 지나가는 행인처럼 몰래 다녀오곤 한다.

얼마 전에 사업단 점검으로 어르신을 뵙고 왔다. 어르신 한 분이 눈이 불편하신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활동하고 계셨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멋쟁이시네!”, “선생님, 내 할 말 있다.”, “뭐예요 어머니?”, “나 백내장 수술해서 눈이 시려서 이 안경 쓰고 일해야 한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나보고 꼴값 떨고 있다고 말하고 가더라. 내가 속이 상해서…” 이러면서 말끝을 흐리셨다. “예? 꼴값? 아니 이 정도 연세되시면 당연히 쓰고 다니셔야 하는데, 그 사람 인성이 안 좋네요. 가정교육을 못 받았나? 왜 다니면서 그런 소릴 하지? 자기 부모면 그런 소리 하나? 아니 자기 자식이 자기한테 그런 소리 하면 좋은가?” 그렇게 나는 3대에 걸친 욕을 해 주었다. 선글라스 너머로 웃고 계신 어머니의 눈이 보였다. “아이고, 선생님이 내편 들어 주니 고마 좋다. 이제 맴이 다 풀릿다. 고맙데이.” 나는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고 궁시렁거리며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렇게 나는 어르신의 자식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신입 사회복지사다. 가끔 어르신들이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시거나 소리를 지르고 함부로 하실 때 “정말 이상한 분들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사탕 두 알, 귤 2개, 박카스 한 병을 주머니에 몰래 넣어 주며 부끄럽게 바라보실 때, 거리에서 알아 보시고 환하게 웃어 주시는 아름다운 이분들이 내 가족같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제야 일을 하러 나갔냐고 묻기도 하고, 갑자기 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16년 만에 화려한 외출을 했노라고. 나의 화려한 외출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얼마나 조바심을 느끼고, 얼마나 애태우며 준비했는지 그들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랬듯이 우리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아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정말 나이 듦이 서러워 무엇이라도 어느 곳에라도 쓰이고 싶어 나오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들이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얼마나 애태웠을지 나는 안다. 그러니 노인일자리사업에서 활동 중이신 어르신들을 뵙거든 “수고하십니다.”라는 따뜻한 이 한마디를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 그동안 다리 놓는 사람들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글을 제공해 주신 교구 사회복지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