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사들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시는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사신학에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소홀함을 보였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성사의 원리가 되신다. 그분은 성사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이신 것이다. 즉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에게 내려오고, 그분 안에서 사람의 기도가 하느님께 도달하게 된다. 그러기에 교회는 성령의 임재를 비는 기도문인 ‘성령청원기도(Epiclesis)’를 통하여 성령께서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성사론은 성령께서 성사들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공의회 이전과 비교하여 여러 가지로 풍부하게 성찰하고 있다.
1. 성사의 원천이신 성령
가. 성사의 원리
‘성사’는 그리스도의 성사이고 동시에 성령의 성사이다.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항상 교회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교회 안에 성사를 세우시고, 그리하여 교회로 하여금 당신의 현존을 경축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사 안에서 인간에게 향하시고, 그럼으로써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거룩하게 하는 통교를 항상 새롭게 일으키신다. 성령께서는 전례와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고(5장 1항 참조), 전례와 성사들을 다스리시며, 전례와 성사들 안에서 당신의 선물을 주신다. 그분께서는 성사들의 힘의 원천이요 근원이 되실 뿐 아니라, 모든 성사적인 행위들의 기초가 되는 원리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성사는 ‘성령의 성사’인 것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성사들 안에서의 성령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신비를 성사적으로 베푸실 때에도 구원 경륜의 다른 때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교회가 자기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고, 믿는 회중에게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고 나타내 주시며, 당신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현존하게 하고 실현하신다. 그리고 끝으로 친교의 성령께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명에 결합시키신다.”(1092항)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사람을 성사들 안에서 사로잡으시고, 그를 통해서 사람을 그리스도와의 친교에로 이끌어 가신다.
나. 성사 안에서의 은총의 중개자
성사는 그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중재되는 교회의 전례적인 표징이다. 왜냐하면 성사들의 내적인 작용은 인간을 죄로부터 정화하고 은총을 통하여 조명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은총, 바로 그 안에서 아버지(성부)로, 아들(성자)로 그리고 성령으로 사람들에게 구원을 선사하시는 사랑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활동하신다. 트리엔트 공의회에 따르면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 곧 성령의 은총의 표지이다. 말하자면 이 성사 안에서 보이는 표지를 통해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이 분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니, 그분은 교회의 모든 성사 안에서 구원을 주는 은총을 선사하신다. “[그런 까닭에] 성사 혹은 말씀 안에서의 은총의 작용은 영으로 말미암은 작용이며, 성령의 내적인 파견을 부르는 것이다.”
성사적인 전례 안에서 교회는 하느님께 축복을 청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그 청하는 이를 성령께서 이끄시도록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사람에게 내려오며, 사람의 기도가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로 올라간다. 성사는 인간을 하느님과 연결한다. 즉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속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베푸는 성사들을 통하여 성자와 성부와 일치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이고 사귐이다.
다. 성사 안에서의 성령청원기도
교회는 성령의 작용을 소위 ‘성령청원기도(Epiclesis)’로 요청한다. 이는 성사 집전에 있어서 성령의 임재를 비는 최고의 기도형태이며, 삼위일체적인 기도를 드러내는 교의의 전례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기도문은 성부께 향해진 기도로, 성부께서 아들을 통하여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성령청원기도는 성령의 활동만을 청하지 않고, 성부·성자·성령이라는 하느님의 모든 위격들의 공통된 활동을 청하는 것이다.
“성령청원기도는, 모든 전례적인 행위에서 신적인 생명의 충만함에 대한 인간의 참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기도이며,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나오는 기도문으로서, 교회의 거룩한 행위들에 대한 인간의 시공간적인 참여를 가져오는 기도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의 설명에 따르면, 성체성사에 있어서의 성령청원기도는 봉헌물의 변화와 관련된 것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변화와도 관련되는 것이다. :
“성령청원기도(Epiclesis)는 사제가 성부께, 성화하시는 영을 보내시어 봉헌 제물을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게 하시고 또 신자들이 그 살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느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이다.”(1105항)
결국 모든 성사 안에 성령께서 새로이 임하시고 활동하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성사는 나름대로 고유한 또 하나의 새로운 성령강림이라 할 수 있겠다.
2. 개별 성사들 안에서의 성령의 활동
성령께서는 성사들 안에서 활동하신다. 각각의 성사가 보이는 성령론적인 국면은 다음과 같다.
가. 세례성사 : 성령을 통해서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기초성사
* 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의 일원이 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세례명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함께 부르는 삼위일체적인 세례정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에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베풀어지다가(사도 2,38 참조) 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의 이름으로 베풀어졌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세례명령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어쨌거나 ‘세례’가 예수님의 부활 후에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였던 교회의 기초성사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약성서 밖에서도 비슷한 의식들을 볼 수 있는데, 벌써 고대에 일종의 단체가입식이었던 물의 의식이 있었고, 또한 예수 시대의 유대교 안에서는 세례와 같이 여러 가지로 구원의 의미가 있는 행위들이 있었다. 이러한 의식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무엇보다도 요한의 세례에서 유래하게 되었다. 즉 요한의 세례는 ‘죄의 용서와 회개를 위한 세례’(마르 1,4)였던 것이고, 예수님 스스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으니, 요한에게 받은 예수님의 세례는 당신 제자들과 초기 교회에 있어서 큰 의미를 지녔던 것이었다.(마르 1,9-11 참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베풀라는 사명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례는 세례자 요한이 말한 것처럼 성령 안에서 베풀어지는 세례였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 3,11)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포와 연결되어 세례는 성령강림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베풀어졌는데, 바오로 사도는 성령 안에서의 세례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1코린 12,13)
성령께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설하시려고 세례를 통하여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받아들이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물을 축성할 때에 (특히 부활성야에서 세례수를 축성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성령의 능력이 물위에 임하시기를 청한다. 그래서 세례예식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함께 부른다. 이렇게 하여 세례를 통하여 사람은 교회의 일원이 된다. 그러므로 세례집전자는 크리스마 성유를 바르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전능하신 천주여, 주께서 이 형제 자매들의 죄를 사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셨으니, 몸소 구원의 성유를 바르시어, 주의 백성이 된 이 형제 자매들로 하여금 사제이시요 예언자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어른입교예식, 224항)
* 재생과 새 삶을 위한 성령의 오심
세례는 성령의 성사로서, “세례는 세례를 통하여 새로 태어난 모든 사람을 묶어주는 일치의 성사적 끈이 된다.”(일치교령 22항) 신약성서에 따르면, 세례를 통하여 성령께서 전달되시고, 죄가 사해지게 되며, 따라서 성령의 중재는 회개와 믿음과 용서와 더불어 세례의 본질적인 내용을 결정짓는다. :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티토에게 보낸 서간’은 세례를 재생의 씻음과 성령 안에서의 쇄신으로 이해하며 성령의 파견과 전달에 따르는 의화를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3,5-7)
생명을 주시는 영이신 성령께서 사람을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세례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도록, 즉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은총을 선사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비슷한 이해는 세례성사의 예식문 안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세례수 축성 때에 드리는 세례집전자의 기도는 이러하다.
“주님, 주의 교회를 굽어보시고 이 교회 안에 세례의 샘을 솟아나게 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독생성자의 은총을 이 물에 부어주심으로써, 천주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묵은 허물을 씻어버리고 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하소서.”(어른입교예식, 258항)
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며 재생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변화(회심) 역시 성령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내적인 변화 혹은 회심은 하느님의 영 나아가 하느님 자신과의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선사하는 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세례자가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할 때면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세례자 안에 하느님께 향하는 움직임을 일으키시고, 또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를 향하여 살아가도록 힘을 주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를 흠숭과 사랑과 순종이 하나가 되어 있는 기도의 자세를 갖도록 이끄신다.”
*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날인(捺印) - 인호(印號)
세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파견과 전달은 아주 초기교회 때부터 ‘날인(捺印)’으로 이해되었다. 즉 교회는 성령께서 세례자에게 임하심을 일찍부터 세례자에 대한 성령의 날인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에페 1,13)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에페 4,30)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21-22)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3세기 중엽에는 이단자가 받은 세례의 유효문제를, 이후에는 배교자들에 의해 주어진 성품성사의 유효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인호교리가 나오게 되었고, 이는 피렌체 공의회(1439)와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서 확립되었다. 즉 유효하게 세례·견진·성품성사를 받은 신자들에게는 소멸되지 않는 영적인 표지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례자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날인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되며, 축성되고 날인된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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