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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그라’와 아이들


박경현(프란치스코)무학고등학교 교사, 진량성당

 

1.

프랑스 페리고드 지방은 거위 농가 일색이다. 기이하게도 그곳의 토실토실한 거위들은 제 몸만큼이나 큰 깔때기를 입에 꽂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농부들은 시간에 맞추어 깔때기 속으로 옥수수를 들이붓는다. 거위의 모이주머니를 가득 채우기 위하여 막대기를 이용하여 강제로 모이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는 물을 붓는다.

 

이렇게 하면 거위의 간이 부드러운 지방간으로 비대해져서 1kg 이상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과식을 한 거위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고통의 대가로 거위의 간은 체중 40kg 정도 몸무게를 가진 사람의 간보다 더 크게 살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 3대 미식재료라는 푸아그라(살찐 간)를 만드는 방법이다.

 

2.

굵은 기둥과 높은 키, 저마다 자란 가지에는 발갛게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생각만으로도 정겹기만 한 사과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가 매미를 잡거나 가장 높은 곳에 달려 있는 잘 익은 사과를 따 먹는 장면은 누구나 떠올리고 싶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양의 사과나무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과 함께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재배하기에 적당한 사람 키 정도의 높이를 가진 줄기로도 얼마든지 향상된 품질의 사과를 맺어주는 새로운 품종들이 계발되었기 때문이다. 나무의 몸통이나 가지는 오로지 과일의 맛과 향을 위하여 대지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여 열매까지 전달하는 통로로서의 기능만 남기고, 그 외의 것은 모조리 퇴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3.

개 짖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새소리가 뒤섞인 휴대폰의 전자음이 예약된 시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요란하게 소리를 울려댄다. 평안하게 들려야 할 시골 고향의 소리들이 이승이 아닌 아득히 먼 곳에서 조금씩 다가와 주검처럼 쓰러져 있는 내 어깨를 끌어당긴다. 전원 스위치를 올린 듯이 온몸의 뼈마디가 조금씩 작동을 시작하면 움찔움찔 손을 뻗어 휴대폰의 소리를 죽이고 조금 더 버티어 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는 불안감에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리며 흐릿한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공기는 냉기를 잃지 않고 하늘의 별들이 듬성듬성 지친 빛을 껌뻑인다. 이른 등굣길은 한산하여 휑하니 도착한 학교는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부의 건물처럼 기하학적인 완강한 어깨로 버티어 서 있다. 어둠의 구석구석에서 중장비와 같은 가방을 챙겨든 동료들이 잠을 채 떨치지 못한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생각도 없이 교실이라는 커다란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정된 시간이 다가 오자 복도의 저 끝에서 무심히 서 있는 감독 선생님의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사력을 다하여 정신없이 교실을 향해 돌진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달려와도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는 비록 무리한 약속이라 할지라도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관례를 스스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고 고3이다.’

 

새벽 7시가 되기도 전 고3 교실의 불은 켜지고 반복된 문제풀이 훈련 중심의 9시간 정도의 정규수업과 보충학습 그리고 자율학습 등으로 우리의 사투는 이어진다. 아침을 먹은 기억은 아득하고 구내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은 식사라기보다는 칼로리를 공급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식품에 불과하다. 늦은 귀가, 새벽 1시를 넘기고서야 불안한 마음을 안고 죽음과 같은 잠에 빠지기가 무섭게 또 새벽은 냉정하게 다가온다.

 

4.

피로와 긴장의 반복으로 지친 아이들이 야간 자율학습 마침종이 울리자마자 일순간에 빠져 나간다. 진학실의 불을 끄면 그제야 사방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깊어 버린 밤. 갑자기 느껴지는 정적, 계단을 내려오는 내 발소리가 크게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을 돌아 나오면서 오늘따라 머리가 복잡하다.

 

초기 성경에도 등장할 만큼 사람과 더불어 긴 역사 동안 함께 하며 고기와 알을 공급했고, 보드랍고 보온성이 뛰어난 깃털을 제공해 온 거위의 맑고 작은 눈망울이 떠오른다. 이미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과분하게 감사한 일이거늘, 정말 간이 커진 것은 거위가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삐뚤게 사용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내가 사람인 것이 부끄럽다. 

 

작고 여린 가지로서는 지탱할 수 없는 굵기의 과일들을 매달고, 총총히 늘어선 쇠파이프와 평행선을 이루는 수많은 철선들에 묶여 있는 나무들로 바뀌어 버린 낯선 모습의 사과밭.  지나친 운동이 고기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가축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알을 많이 생산해야 할 가금류들에게는 밤낮으로 불을 밝혀 산란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열매가 필요하면 열매를, 잎이 필요하면 잎을, 뿌리가 필요하면 뿌리를 기형적으로 성장시키는 비밀을 캐낸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 성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게 된다. 고3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욕구를 접고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을 연마하는 가장 단순한 작업에 몰두하도록 내몰았다. 인생은 복잡하지만 경쟁은 단순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한 번의 시험으로 그 능력을 점수화하는 이 잔인한 제도에 대하여 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각자 다른 다양한 소질들이 있다 할지라도 배운 지식의 기억력을 측정하여 한 줄로 세우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 역시 치열한 경쟁을 앞둔 우리에게 잡념으로 취급했다. 그냥 제발 공부에 몰두하도록 강요했다. 대학 입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기억력과 순발력을 소재로 한 게임일 뿐이며, 오로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능을 연마하는 반복된 훈련에 몰두하도록 이끌어 가고 있는 나는 못난 선생임을 고백하고 싶다.

 

더 큰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더 많은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하기 보다는 막무가내로 윽박질렀던 순간, 부여받은 능력을 다해 세상에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기쁜 마음으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가슴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시험성적에 집착했다. 아이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여유를 갖지 못하고 독서와 토론 그리고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살아가면서 맞게 될 낯선 삶의 장면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이끄는 일에 소홀했다.

 

나는 가장 손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하려고 한 초라하고 작은 직업 선생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아이들과 함께 한 이 무모한 일상이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의 모두일 수는 없음을 고백하고 싶다.

 

젊은이는 공부에 몰두해야 한다. 그러나 몰두하게 감독하는 것보다 스스로 몰두할 결심을 하고 이것을 지켜가도록 끊임없이 설득하는 지루하고 힘든 길을 생략한다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소중한 다른 모든 것들을 팽개친 채 우리 아이들을 푸아그라를 생산하는 거위나 현대의 사과나무로 취급하는 바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어둠이 자꾸만 내려 쌓이는 운동장에서 나는 내내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