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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건강
스트레스 후 나타나는 적응장애


이종훈(안드레아)|의사, 대구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과

하루 종일 토론토에 있는 아동병원에서 캐나다 아이들과 함께 정신과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나서, 물론 영어 때문에 무지한 고생을 하면서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보니, 한국에서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현대인의 정신건강’이라는 제목으로 요즘 사람들이 흔히 느끼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들을 의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글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의 메일이었다. 어떤 것이 요즈음 사람들이 느끼는 문제일까 고민하다가, 내가 처음 여기 토론토에 와서 적응하던 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외국에 처음 나가서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되는 것이 언어적인 문제이고 시간이 지나다보면 문화적인 충격에 의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누구나 갈등을 느끼면서 불안해하고 이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를 생각하게 되고 대부분은 슬기롭게 잘 극복해나간다. 여기 이민자들 중에서도 가끔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떤 이들은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에 적절한 대응기제를 사용하지 못하고 적응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를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적응장애’라고 한다. 물론 스트레스의 정도가 너무 강력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극복하기 힘들 정도라면 다른 현상이 발생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적응장애라고 한다. 여기서 적응장애는 정신의학적 진단 편람의 정의에 따르면, 어떤 스트레스를 받은 후 3개월 이내에 그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지 못하고 비적응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라고 한다. 그 정신적 충격의 정도에 비해서 정상적으로 기대되는 것보다 비적응적인 반응이 지나치게 심하고 대인관계ㆍ학업ㆍ직업 등의 기능장애를 나타내게 되는데, 스트레스가 없어지면 6개월 이내에 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정신과 환자 중 10% 정도에 해당되고 청소년기에 가장 많으나 어느 연령에서나 나타나고 남여 비율은 1:2 정도인데 특히 독신여성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원인은 물론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스트레스로 같은 종류의 스트레스라 할지라도 발달과정에 따라서 그 정도는 다를 수 있고, 적응능력 면에서는 아동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특히 유아기 동안의 부모 상실은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전 발달에 심각한 상처를 준다고 알려져 있다.

 

증상은 다양한데 성인에서는 우울, 불안 또는 우울과 불안의 혼합형태로 가장 잘 나타나는데 비해 소아와 노인에서는 신체적 증상이 잘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공격적 행동, 무모한 운전, 과음, 범법행위, 문화파괴행위, 대인관계 회피 등도 나타난다. 증상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직후뿐만 아니라 3개월 이내에만 나타나면 진단 가능하고, 정신적 충격이 끝난 경우라면 대부분 6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지 않는다.

 

적응장애에 대한 치료방법은 정신치료가 우선적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끼리 집단치료를 해도 효과적이다. 우선 정신적 충격의 사건을 해결해 주도록 하고, 정신치료를 통하여 충격적 사건이 그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린 시절 받았던 외상적 경험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이해시켜 주는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품행장애로 나타나는 적응장애일 경우에는 단순히 구출해 주려고만 하지 말고 그들이 일으킨 행동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고, 감정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무심한 지지나 이해 등은 병적행동을 더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조정은 단기 치료로써 지지, 암시, 재확인, 환경변화, 단기 입원 등을 사용하여 스트레스 상황을 해결하도록 융통성 있게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약물도 도움이 되는데, 불안증상이 심할 때는 항불안제를 사용하고, 불면증에는 수면제를 그리고 우울증이 저변에 존재하는 경우에는 항우울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단기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 약력 : 중앙대 의대 졸업, 중앙대 의과대학 석사, 계명대 의과대학 박사, 정신과전문의로서 현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대한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정회원, 대한 정신 약물학회 정회원, 생물치료정신의학회 정회원,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겸 정신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