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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대구순교자 20위 - ④ 김약고배
김약고배 야고보


김혜영(율리엣다)|포항 대잠성당, 동화구연가

“화춘아, 오늘은 천주십계를 배워 보기로 하자.” “네, 아버지.” “자, 따라해 보거라.”

“하나,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라.” “하나,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라.”

“둘, 천주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둘, 천주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아버지의 말을 앵무새처럼 또박또박 따라하는 어린 화춘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오늘도 온 집안에 울려 퍼졌어요.

“여보, 이제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가 그 어려운 교리를 알아듣기나 하겠어요?”

“무슨 소리, 우리 화춘이가 천주교리 배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한 번 배운 건 잊어버리지도 않잖소.”

 

화춘이의 아버지는 화춘이가 젖먹이 때부터 기도문과 교리문답을 읽어 주고 따라하게 하며 천주교리를 가르쳤어요. 화춘이는 교리 공부하기를 유난히 좋아했고, 자라면서 천주교리에 척척박사가 되었지요.

화춘이는 야고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어요. 김화춘 야고보. 사람들은 화춘이란 이름 대신 그를 김약고배라고 불렀어요. 약고배란 야고보를 한자로 적은 이름이에요.

 

김약고배 야고보는 충청도 청양 고을 수단에서 태어났어요. 평소 그는 온순하고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누가 천주교를 욕하거나 교리에 관해 토론할 때면 성난 사자처럼 용감하고 거침없이 변했어요.

 

“천주학쟁이들은 모두 근본도 모르는 놈들이야. 어떻게 자기 조상 제사는 나 몰라라 하면서 서양귀신을 섬길 수가 있단 말이야! 에잇, 고얀 놈들!”

“이것 보시오! 거, 듣자 하니 천주학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듯하오. 도대체 세상에 무슨 신이 그렇게 많단 말이오. 사람이 부모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사실이나 부모나 조상은 사람일 뿐, 그 낳고 기른 은혜에 감사함은 마땅하나 신처럼 섬겨서야 되겠소! 참으로 근본을 따지고자 한다면, 사람을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든 근본부터 따져야 할 것 아니오. 그분이 바로 천주님 단 한 분으로 유일하시거늘 어떻게 다른 신을 섬길 수가 있겠는가 말이오. 당신들도 헛된 신이나 미신을 믿지 말고 천주를 믿어 영혼을 구하시오!”

“아이고, 순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만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낼 줄도 아네, 그려.”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서 앞뒤 틀린 말 하나 없으니 저 사람은 도대체 당해낼 수가 없다니까.”

이처럼 그는 어릴 때부터 익힌 교회지식을 바탕으로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특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규범을 충실히 지키고, 기도와 성서 읽기에 남다른 열심을 보였어요.

 

김 야고보는 1815년 2월에 경상도 지방을 시작으로 한 을해박해 때 청송 노래산에서 체포되었어요. 안동 진영으로 끌려온 그는 진보 고을의 머루산에서 체포된 신자들과 함께 갖은 협박과 모진 고문의 위협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배교하지 않자 다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경상감사 이존수로부터 심문을 당했지요.

“에그, 끈질긴 놈들! 벌써 스무 달째가 아니더냐. 조정에서는 대체 뭐 하느라고 이렇게 사형 허가가 더딘 게야, 원참.”

“나으리, 이놈들은 형조에서 재조사를 벌여 살길을 열어 주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학을 버리지 않은 아주 요망한 놈들이니, 조정에서 이제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요.”

“아무렴 그래야지. 특히 김약고배 그놈은 부자간에 사학을 전수하여 대대로 악을 이룬 놈 아니더냐. 귀로 듣고 입으로 외워 사악한 학문을 깊이 믿고는 여러 번 형벌을 받았는데도 뉘우치지 않으니 죽어 마땅한 놈이다.”

 

1816년 11월 1일, 김 야고보와 그들의 일행은 마침내 영광스러운 순교의 관을 쓰게 되었어요. 김종한 안드레아를 선두로 하여 차례로 망나니의 칼날을 받았지요.

경상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한 한 줄기 등불과도 같았던 김약고배 야고보는 어릴 때부터 키워 온 천주님을 향한 깊은 신앙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