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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신부의 신앙상담
김지현 신부의 신앙상담


김지현(세례자 요한)|신부. 대구대교구 전산실장

질문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장에 혼인성사를 하고 축복 속에 살고 싶지만 형편이 그렇지 않아 아직 결혼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순결을 지키지 못해 부끄럽지만, 어떤 분은 문란한 생활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합니다. 정말 그 말을 위안으로 삼아도 되는 걸까요?

 

답변

교회의 교도권은 1245년 제13차 <리옹공의회헌장>부터 1975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성윤리상의 특정문제에 관한 선언>에 이르기까지 혼전 성관계를 중죄라고 보는 확신을 표명해 왔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와 영국성공회도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죄하기 위한 입장 표명이 아니라 중요한 어떤 것을 지켜내자는 입장 표명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지켜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며, 혼전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중죄인이냐 아니냐를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1. 교회가 ‘혼전 자제’를 지지하고 권유하는 이유

영구적인 결혼 관계만이 참으로 행복한 성관계의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① 혼전 성관계는 자녀출산과 교육이라는 목적을 배제함으로써 인간 성(性)의 고유성을 파괴한다. - 性의 자연적 목적은 자녀출산과 교육이므로 자녀의 건전한 교육을 보장할 수 있는 부부의 性만이 ‘책임 있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혼전 성관계는 참된 사랑이 되지 못한다. - 性은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의 표현법이고, 그 性을 통해 사랑은 더 깊어질 수 있다. 性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본성적인 것이지만, 거기에는 (당신만이라는) 배타심, (서로에 대한) 소속감, (행복을 위한) 영구성 같은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없거나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은 파멸적인 갈등과 불행을 가져온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으로 묶이지 않은 혼외 관계는 깊은 충족과 자기실현을 느끼지 못함으로써 결국 불만족과 허무함이 남게 된다.

 

③ 혼전 성관계는 사랑의 일치를 이룰 수 없다. - 사랑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가지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서로를 초대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일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 일치는 둘만의 의지와 선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받는 공적인 인정도 포함한다. 이 궁극적 일치를 목적으로 하지 않거나 불가능하게 된다면 자신과 상대에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2. 이에 대한 반대 견해들과 교회적인 응답

혼전자제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금기윤리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① 성적 본능은 다른 본능들과 마찬가지로 충족되어져야 한다. 성적 자제는 반자연적인 억제를 강요하는 것이다. 성적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심리적으로도 해롭다.

 

- 그러나 교회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해로움 없이도 자제를 지키고 살아갑니다. 게다가 혼전 관계를 가진 사람이 더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불안한 요소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논리는 그리 타당성이 없습니다.

 

② 결혼하기에 알맞은 배우자인지 성적인 면에서도 시험해봐야 한다. 그러한 검증은 결혼 이후가 아니라 결혼 이전에 해야 한다.

 

- 그러나 교회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꼭 시험해봐야만 하는 것입니까? 성교불능이 아닌 한 두 사람은 언제든 결합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과 애정, 서로에 대한 존중이지 않겠습니까? 부부로서 살아가기 적당한가, 아닌가를 앞당겨 시험해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시험이고, 시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③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닌 한, 혼전 관계는 합법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만나고 관계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왜 그들을 제한해야 하는가?

 

- 그러나 교회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유로운 혼전 관계로써 더 큰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구적인 헌신 없이 이런 식으로 성을 사용하는 것은 사랑의 의미와 깊이를 공허하게 하는 것이고 더욱 고독과 공허함 속에 서로를 밀어 넣을 뿐입니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혼전 자제’를 권유하고 지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욕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는 말입니다. 다만 그 열망과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우리에게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의지를 분명히 세우되,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하십시오.

 

정말 사랑한다면 내 깊은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고 또 함께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정말 삶의 일치, 고민의 일치,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