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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용사의 비가 없는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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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암브로시오)│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 전공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핀란드’라는 나라는 비교적 생소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역사와 지정학적 입지는 우리와 매우 유사한 데가 많다.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이 북유럽의 나라는 여성의 지위가 매우 놓은 나라이다. 여성이 국가 원수의 직을 맡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일로 알려져 있으며 가사나 육아도 여성만의 역할로 보지 않고 남편이나 아내가 의논하여 분담하고 있다. 그래서 가사 전업 남편이 전체 가정의 20%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다가 20세기 초까지는 러시아의 통치를 받기도 하였다. 전체 국토가 북극권에 가깝게 위치하기 때문에 겨울이 길다. 9월이면 벌써 냉기가 돌기 시작하는 날씨는 겨울에는 영하 40℃까지 내려가기도 하며 겨울에는 특히 밤이 길고 낮이 아주 짧아, 새벽인가 하면 저녁이 되어 좀 과장하면 겨울은 내내 밤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국토의 70%이상이 그렇게 굵지 않는 침엽수의 숲이며 국토의 여기저기가 그렇게 크지 않는 호수가 말 그대로 널려 있다. 하기는 전체 국토면적의 거의 10%가 빙하가 녹으면서 이루어진 호수, 즉 빙식호氷蝕湖이고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경작지는 전 국토의 6%밖에 안 된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자연 조건과 주변의 강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 핀란드는 오늘날 임산업을 기초로 IT정보기술산업에 있어서 국제적 선도 주자가 되어 있다. 핀란드가 앞에 말했듯이 남녀 평등한 사회 구조 위에 탄탄한 사회보장제도와 선진 기술을 활용하여 안정된 오늘을 이루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을 끝까지 돌보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 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이 나라의 수도인 헬싱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헬싱키에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작곡가인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공원이 있다. 거기에는 수백 개의 강철관이 마치 파이프 오르간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옆에 시벨리우스의 얼굴 동상이 바위 위에 놓여 있다. 시벨리우스는 1919년(우리 나라에서는 3·1독립만세 운동이 있었던 해이다) 핀란드가 러시아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되어 공화국 건설이 선언되던 날 조국 핀란드의 공화국 개국을 축하하는 웅대하고 장엄한 교향곡 핀란디아(핀란드 송頌)를 작곡·연주하였다. 이 곡은 오늘날에도 온 핀란드 국민들이 국가보다 더 사랑하며 아끼고 감격해 하는 교향곡이다. 그것은 곧 핀란드 온 국민들을 하나로 결속하는 정서적 끈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헬싱키 시내에 있는 국민묘지다. 그곳에 있는 모든 국가 유공자들의 무덤은 계급이나 직급이나 국가를 위한 공헌이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가 꼭 같은 크기를 하고 있다. 조국을 위하여 공헌한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존경의 대상이라는 뜻이라 하겠다. 즉 공헌한 정도나 결과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하여 공헌하였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사람 아끼는 마음’이 거기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립묘지에는 반드시 ‘무명 용사의 비’라는 것이 있다. 시신도 찾지 못하고 그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고독한 전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이다. 국경일에는 국가원수가 이 무명 용사의 비에 헌화하고 향을 피우는 것이 일반적 행사이다.

 

그런데 유독 핀란드에는 어디에도 이 ‘무명용사의 비’가 없다. 그것은 핀란드사람들이 이름 없이 죽어간 병사들에 대한 마음이 얼어붙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핀란드에는 무명 용사가 없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계급이 낮은 병사일지라도 전사하거나 실종될 경우 그 병사의 시신을 반드시 어떤 희생과 댓가를 치르더라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종된 한 사람의 병사를 찾기 위하여 한 소대 병력을 적진에 투입하여 그 시신을 찾아 온 사례가 많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가 ‘우리를 위하여 죽어간 동지의 시신’을 끝까지 찾아오고야 만다는 핀란드 사람들의 행위는 살아남은 자와 죽은 사람을 하나로 엮어 놓은 역사의 띠라 하겠다. 이 띠는 한 민족이 긴 세월을 두고 이어 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된다. 그것은 마치 교회에서 행하는 성사와도 같다 하겠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의 사정을 돌아보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멀리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가족이 헤어지고 그 결과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리한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가깝게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제초제의 독성에 접하게 되어 고생하고 있는 이들과 그 2세나 3세들까지도 제초제 독성에 시달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분들에게 충분히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어느 TV 방송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를 제작하여 국가 권력에 의한 무고한 국민들에 대한 학살을 보도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군에서 국방의무를 지고 있던 적지 않은 수의 젊은이들이 겪은 의문스러운 죽음에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관련된 처리 방안을 보면, 관련 기관이 책임을 벗기 위한 묘수를 부리고, 또 일반 국민들도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위에 제일 존귀한 존재이다. 이 교리는 머릿속에 기억되고 이해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아니 되며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창조사업의 기초를 제도화하고 실천하는 것은 창조사업을 완성하는 사업에의 동참이며, 하느님은 우리를 이 창조사업에의 동참에 초대하셨다. 이 초대는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소중한 사명중의 하나라 하겠다.

 

하느님처럼 창조된 인간이 현실 사회에서 하느님처럼 존중되는 정치제도를 만들고 실천하는데 협력하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소중한 소명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