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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모아 태산(?)
김해창 기자의 푸른통신


김해창 │국제신문 생활과학부 차장

어찌된 셈인지 올 여름철은 유난히도 찜통더위와 물난리 소식이 많았던 것 같다. ‘지구온난화’탓인지 ‘열섬heat island’쪺현상 탓인지 몰라도 도시의 여름은 견디기 힘들다. 물 한 방울이 아쉬운 판에 물난리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흙탕물을 보면 참담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난리를 겪으면서도‘물부족 국가’로 허우적대는 나라.

몇 년 전 경기도 파주지역에 대홍수가 났을 때 식수가 모자라 수재민들이 빗물을 받아 밥을 짓고 빨래를 하던 모습을 TV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빗물 모아 밥을 지어먹는 사람도 있는 반면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고 그야말로 ‘물 쓰듯’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어릴 적 큰 물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1972년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지금은 경북 포항시에 속하는 영일군 지행면 임중리라는 시골에서였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며칠 새 405㎜의 비가 내렸다. 같은 반 친구를 포함해 한 동네 아홉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가족과 함께 헤엄을 쳐 산 위의 교회로 가서 이틀 밤을 지샜다. 내려와 보니 굴뚝만 댕그라니 남고 부서진 우리 집, 무대 대신 마을이 훤히 보이던 우리 극장 건물, 라면·된장 등 구호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그런 와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은 떠내려 갔던 쌀통을 찾은 일이다. 우리 집 구정물을 가져가 돼지를 치시던 분이 아랫마을 과수원에 쳐 박혀 있던 녹색드럼 쌀통을 용케 알아보시고는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고무패킹이 돼 있어 수압으로 인해 쌀통 안에 쌀은 남아있었다. 우리는 그 쌀통을 냇물에 담가놓고 퉁퉁 불었던 그 쌀로 열흘 가까이 밥을 해먹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6월말 정부는 전국에 30개나 되는 댐 건설 후보지를 발표하고 물부족 해결을 위해 댐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지난 7월엔 이미 12곳의 후보지를 선정, 발표했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과연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선 대규모 댐 이외엔 대안이 없을까.

 

우선 댐부터 짓고 보자는 식의 ‘공급위주’의 물 관리 정책은 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그릇되게 한다. 낡은 수도관 교체나 절수기 설치, 중수도 확대 등 물절약 시스템에 대한 노력을 약화시키고 산림이나 논의 ‘녹색댐’ 기능을 무시해 오히려 환경재앙을 초래할 것이란 비판도 있다.

 

이런 가운데서 최근 도심에 ‘미니댐’을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니댐은 바로‘빗물저장탱크’를 말한다. 도시에 내리는 비는 매우 중요한 수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쓰레기처럼 하수도로 흘려보내고 있다. 지붕이나 대지에 내린 빗물을 탱크에 모으고 지하로 침투시키면 도시홍수를 막을 수 있고 허드렛물이나 방화수로 쓸 수가 있어 미니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한무영 교수팀은 최근 빗물이용촉진을 위한 홈페이지(waterfirst.snu.ac.kr/rainwater)를 개설하고 ‘빗물이용 지구사랑’이란 책을 펴내 빗물모으기운동에 나섰다. 

 

연간 강수량이 1,274㎜로 세계 평균 970㎜의 1.3배인 우리 나라는 빗물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아 내린 비의 70%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빗물을 받을 수 있는 집수면적이 60㎡일 경우, 연간 강수량 1,200㎜, 유출계수 0.9로 잡으면 연간 모을 수 있는 양은 64,800ℓ로 하루 평균 177ℓ가 된다. 이는 4인 가족의 하루 화장실물 등 허드렛물을 거의 충당할 수 있는 양이다. 따라서 빗물저장탱크는 200ℓ 크기의 10∼30배 규모의 크기면 웬만한 가뭄도 걱정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용화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빗물이용시설이 주택에서부터 공중화장실 공원분수대 등 공중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다. 도쿄 스미다구에는 골목의 빗물통을 연결해 만든 ‘천수존天水尊’ 혹은 ‘노지존路地尊’이라고 하는 마을공동 빗물저장탱크가 설치돼 있다. 우물에 물을 모았다 수압펌프 등을 이용해 방화수, 정원수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 98년 일본 도쿄의 시민환경단체인 AMR에서 1년간 연수생활을 할 때 ‘노지존’을 만든 도쿠나가 노부오 씨를 만난 적이 있다. 노지존은 에도시대 때 물을 받던 시스템을 되살려낸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산성비 우려가 높은 초기빗물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도 고안해냈다. 현재 일본에는 10㎥의 가정용 빗물저장탱크(가로 2.5m, 세로 2.5m, 높이 2.5m)가 널리 보급되고 있다. 설치비는 50만 엔(우리돈 5백 50만 원) 정도이다.

“No more Tanks for war, Tanks for peace!”(전쟁용 탱크 대신 평화를 위한 빗물탱크를!) 도쿠나가 씨가 속해 있는 일본 환경NGO인 ‘그룹 오브 레인드롭스Group of raindrops’가 내걸고 있는 캐치프레이즈이다. 이들 모임은 지난 94년부터 매년 ‘빗물이용 국제회의’를 열고 있다.

 

우리 나라도 지난 3월 개정된 수도법 11조에는 빗물이용시설의 설치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등 지붕면적이 넓은 시설물 신축 때엔 빗물이용시설 설치를 의무화했고, 이들 시설기준 및 관리 등을 환경부령으로 정하며, 국가 및 지자체가 빗물이용시설의 설치비용 지원 및 수도요금 경감을 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월드컵 경기장 10곳 중 인천·대전·전주·서귀포 경기장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중이다.

 

문제는 상위법은 있으되 아직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빗물 수질기준 설정 및 빗물저장조의 등록요건, 저장조 설치 및 관리기준, 그리고 정부보조금 지원 세부규칙 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빗물 한 방울을 애타게 갈구하는 농민이나 고지대 주민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 탁상에서 나오는 행정에서 절박함이 있겠는가.

 

얼마 뒤 나도 우리집 빗물이용대책 마련에 나섰다. 날씨가 흐려지면 이층 슬라브 옥상에 빈 김장용 플라스틱통을 있는 대로 열어 젖혀놓고, 건물 빗물받이 홈통 밑엔 끝을 자른 고무장갑을 끼워 플라스틱 대야에 빗물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한두 양동이 정도의 빗물로 옥상의 텃밭상자나 꽃나무에 물을 주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 제대로 된 빗물저장탱크를 구할 순 없을까.

 

요즘 나는 비오는 날 아스팔트 위로 넘쳐 흐르는 빗물을 보면 우울하다. 댐 건설 노력보다 빗물저장탱크 같은 ‘미니댐’의 보급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 (중략) …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야….”

 

장사익의 노래 <봄비>가 내 마음을 울린다. 아이고 아까운 빗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