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더위가 가시지 않은 가을의 문턱. 영천 시외버스터미널 옆 한 식당에선 바로 옆에 세워진 <동춘 서커스>의 이야기가 식탁의 찬거리로 올라왔다.
“아줌마, 서커스 봤어예? 곰 진짜 나와예?”
“언지. 곰은 안 나오고…”
오랜만에 찾아온 서커스단이 이들에겐 반갑고 신기할 따름이다. 한낮인데도 서커스단 천막 속에는 구경을 하려고 나온 어르신들로 빼곡히 차 있다.
이들을 불러모으는 힘은 무엇인가?
조금 촌스러운 서커스 복장과 쿵짝이는 트로트 가락에서 그들은 지나간 젊은 날들을 시큼하게 떠올릴 것이다.
공연 시작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이게 몇 년 만이냐고?’ 하고 반가운 마음에 자꾸 훑어보는 것처럼 무대 천장도 한번 보고, 임시로 세워진 무대 기둥도 한번 보고 무대도 한번 보는 사람, 반가운 마음에 일찍 서둘러 와서 한참 기다리다 ‘언제 시작하노?’ 하며 무대만 자꾸 쳐다보는 사람, 이들 모두 젊은 시절 한창 인기있던 그때의 서커스가 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이들을 과거의 시간으로 불러 앉혀 놓고 넋을 빼앗아버리는 곡예사 김영희 님(43세). 그는 올해로 30년 곡예 인생을 살고 있다. 영희 님이 열 살이 갓 넘었을 때 그 당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서커스단이 동네에 자주 왔었다. 서커스 구경할 형편이 못되는 어린 영희 님는 서커스단 아이들의 심부름도 해주고, 쉬는 시간 그들에게 다가가 싹싹하게 얘기도 많이 붙이면서 그들과 친해졌다. 이로써 공연장의 출입이 자유로워진 영희님. 체조묘기와 물구나무서기에 어린 영희 님은 점점 서커스에 매료되어갔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입단시켜달라고 단장님께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승락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는 단장님의 말씀은 서커스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린 10살짜리 아이의 마음을 더 애태웠다.
사업의 실패로 술만 드시는 아버지에게 승락서를 받아내는 일이 영희 님에게는 영 무리일 것 같았다. 경제적 책임을 지고 살림에 허덕이는 어머니에게는 더 어림없는 일이다. 그래서 영희 님은 초등학교 다니는 오빠가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승락서를 가지고 가서 단장님께 내밀었다.
이렇게 해서 영희 님은 서커스단이 그 마을 공연을 마치고 마을을 떠날 때 함께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입단한 지 한참이 지나도 하고 싶은 서커스는 가르쳐 주지 않고 매일 잔심부름만 시켰다. 그는 심부름하다 시간이 남으면 아이들이 무대에서 하는 것을 보고 무대 밑에서 혼자서 재미삼아 연습을 했다.
하지만 입단한 지 두 달이 됐을 때 갑자기 무대에 서던 아이들이 다른 서커스단으로 이동을 했다. 공연 일정에 차질이 생겨 영희 님이 속해 있던 서커스단은 난리가 났다.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 영희 님. 자신이 해보겠다고 나섰다. 못미더워하는 사람, 그래도 한번 시켜보자고 일말의 희망을 거는 사람들 앞에서 그 동안 어깨 너머로 배운 묘기를 보였다. 썩 탐탁치는 않았지만 단장님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이로써 곡예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 화려하게 무대에 오를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프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누구나 그렇듯이 눈물범벅의 세월이었다. 20년 전 목포에서의 공연을 얘기하며 영희 님의 코끝은 빨개진다. “그날 어찌나 눈이 많이 왔는지 사람들은 눈을 피해서 서커스단 천막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연기되어 있던 외줄타기 곡예를 했는데 줄이 얼어서 손에 쫙쫙 붙는 거예요. 꼬마를 어깨 위에 올리고 줄을 타는데 언 줄이 발에 붙어서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얼마나 서러운지… 줄을 타면서 막 울었지요.”
서로 울면서 언 손을 녹여주면서 살아 온 세월이, 영희 님을 지금의 단단한 모습으로 우뚝 세워 놓았는지 모른다.
영희 님에게는 그가 이렇게 마음놓고 서커스에 빠질 수 있도록 기반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직 어리광도 피워보고 싶고,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재잘대고 싶기도 하는 10살짜리 아들이 있다.
그가 공중그네타기 묘기를 하면 신기한 눈으로 온 가족이 모여 자신을 올려다본다. 그런 때면 아들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다. 내 아이와 나도 저 아래에서 구경꾼이 되어 함께 동그란 눈을 하고 서커스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영희 님은 남들처럼 평범한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게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럴 때면 나도 빨리 아이에게 돌아가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한다.
엄마와 일찍 떨어져 보낸 시간들이 아들을 더 일찍 철들게 했을까? 요즘은 아들이 “엄마 조심해서 해. 우리 엄마 최고야” 하며 엄마 걱정이 부쩍 심해졌다. 엄마가 없어도 혼자서 너무 잘자라 준 아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영희 님이 공연 일정에 맞춰 단원들과 함께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이들 가족은 한 달에 2~3일밖에 함께 하지 못한다. 여지껏 신경 한번 제대로 써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영희님은 빠듯한 시간이지만 아들과 남편에게 매달린다. 그가 꿈꾸는 것. 가끔은 나도 평범한 주부가 되고 싶다는 것,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지만 일생을 함께 한 서커스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가 하는 곡예는 서커스단에서 비중이 크다. 쌍그네타기, 술통 돌리기, 접시돌리기 곡예가 끝나면 드디어 영희 님의 의자탑 쌓기 곡예다. 그가 의자를 하나씩 하나씩 올리며 거기에 몸을 맡길 때마다 긴장감이 도는 음악이 흐른다. 관객들, 진행요원 모두 숨을 죽이고 그만 바라본다. 매번 하는 무대지만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이나 직접 곡예를 하는 영희 님이나 긴장하기는 마찬가진가 보다.
영희 님의 의자 돌리기 곡예가 끝나자 진행요원은 영희 님에게 과장된 몸짓을 하며 수고했다는 말을 대신 한다. 영희 님이 애완견 몇 마리를 데리고 무대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불이 활활 타오르는 터널 속을 강아지가 뛰어드는 묘기다. 그런데 오늘따라 묘기의 주인공인 까미가 딴청을 부리며 관객들만 두리번두리번 본다. 겁을 먹은 것일까? 건너편의 영희 님은 까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 이런 마음을 몰라주고 겁을 먹고 포기하고 마는 까미를 보는 영희 님은 속이 더 탄다. 공연하기 전 자기들끼리 싸워서 까미가 조금 다쳤단다. 괜찮겠지, 하고 데리고 나왔는데 심통이 난 까미가 계속 영희 님를 외면했던 것이다.
영희 님은 말 못하는 동물과 하는 묘기보다 조금은 더 위험하지만 아찔한 순간이 많은 공중그네타기 묘기가 차라리 더 편하다. 공중에서 그네를 타고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그의 몸짓은 마치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몸부림 같다. 바람에 날리는 듯한 옷자락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 결코 주눅들지 않고, 그 당당함이 있기에 영희 님은 더욱 아름답다. 쉽게 들뜨고 쉽게 포기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확신에 찬 영희님의 삶은 자신감이 넘치는 것만이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임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