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2005년 여름의 기억
2005년 여름! 이번 여름은 나에게 있어 무더운 날씨보다 뜨거운 기억은 바로 “우리는 그 분을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주제로 독일에서 열린 제 20차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에 참여한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종파를 뛰어 넘어서 이루어진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만남과 일치 그리고 독일인의 삶과 색다른 문화 속에서 체험했던 이번 여름의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을 꺼내어본다.
2005년 세계청년대회를 기다리고, 준비하며
지도신부님이신 배상희(마르첼리노) 신부님과 인솔을 담당해주신 조현권(스테파노) 신부님을 포함한 우리 교구 총 50명의 참가자들은 지난 해부터 매월 모임을 가지며 차곡차곡 쌓은 기도로 이번 행사를 준비하였다. 대회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1박 2일의 피정을 통해 참가자 전원의 소개, 조별 성서 나누기, 주제에 따른 조별 발표, 대회기간 동안의 미사전례 연습, 공연 연습, 독일어 회화 공부 등 실질적인 배움과 나눔의 시간을 가졌으며, 출발하기 전에는 3일기도를 드리면서 이번 대회가 내 삶 안에서 더 큰 체험과 경험이 되길, 공동체가 하나 되어 기도드렸다. 이렇게 기도를 통한 준비는 이번 대회가 단순한 휴가나 이색 관광이 아닌, 기도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아름다운 대자연, 진심 어린 친절의 나라, 오스트리아
8월 3일 - 미사를 통해 이번 대회에 참여하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대회를 위해 수고해준 모든 이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만날 모든 이를 위해, 끝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신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드리며 삼덕성당을 떠났다. 리무진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먹었던 된장찌개의 구수한 맛과 알싸한 고등어조림에 관한 기억, 대회기간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들!
8월 4일 - 드디어 출발! 날이 바뀌며 0시 비행기에 우리의 기대와 희망, 간절한 소망을 싣고 독일로 출발하였다. 16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 후 독일에 도착한 시간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19시 30분, 독일 현지시각은 12시 30분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계신 한인갑(베네딕도) 신부님과 봉사자 모니카의 마중과 환영으로 우리의 오스트리아 일정은 시작되었고, 곧 전용버스를 통해 티롤의 엡스라는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로 이동하였는데 마치 동화 속의 요정들이 사는 곳과 같이 아름다웠다. 독일대회 전에 이루어진 오스트리아의 일정은 우리교구와 자매교구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교구의 초대로 이루어졌는데 얼굴 생김새, 눈이며 머리 색깔, 사용하는 언어 그 모든 것이 달랐지만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친절은 한 형제, 자매와도 같았다. 도착한 첫 날 참가자들은 둘씩 짝이 되어 홈스테이 가정을 찾았다.
8월 5일 - 이 날은 홈스테이 가정별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마음의 모든 것을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었지만 베풀어 주시는 친절과 따뜻한 배려들 그리고 우리의 감사의 마음은 이미 진실이 되어 통하며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8월 6일 - 참가자들 모두 함께 인근의 인스부르크의 주교좌성당, 도시 중심의 황금지붕 등 유럽의 색다른 문화와 건축물을 체험하였고,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크리스탈 박물관의 이색 체험과 분위기 좋은 산장에서의 저녁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8월 7일 - 이곳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 신부님들을 비롯한 참가자들 모두는 한복을 입고 주일미사를 함께 봉헌하였는데, 한복은 모두에게 “Wonderful”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단순히 대회에 참여하고, 초대받은 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구대교구를 대표하는 젊은이 사도가 된 우리는 미사 가운데 준비한 특송과 율동찬양을 봉헌하며 미사 전례를 아름답게 꾸몄다. 미사 후 본당에서 준비한 작은 축제에 참여하고, 짧은 2박 3일의 일정이었지만 이미 ‘엄마’, ‘아빠’라 부르며 홈스테이 가정의 가족들과 실제 가족이 된 우리는 헤어짐 앞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며 엡스에서의 마지막을 마무리하였다. 엡스에서의 여러 가지 추억과 감동을 가슴에 소중히 간직한 우리는 잘츠부르그의 수도원과 수녀원으로 나뉘어 머물면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호프집에서 그 동안 미뤄왔던 담소를 나누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였다.
8월 8일 - 호엔 잘츠부르그 성, 비르길 교육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미라벨 정원, 모짜르트 생가 등 이 날은 잘츠부르그 시내를 찬찬히 둘러보고, 저녁에는 오스트리아 청년들과의 축구 친선경기와 그릴 파티의 시간을 가졌다. 유럽의 건축물들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8월 9일 - 시원한 바람에 모든 근심을 날려버리며, 배를 타고 장크트 볼프강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떠다니는 오리의 버둥거리는 발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호수에서 점심시간을 가지고, 베네딕도 수도원에 모여 공동체 기도를 드린 후, 몬드씨에서 잠시 여유와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신선이 된 듯한 이 느낌! 이 날 저녁도 그 곳 교구 어린이 피정의 장소로 많이 활용된다는 산장에서 그릴파티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8월 10일 - 대성당을 찾은 우리는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대성당 제의실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 제의실답게 그 안은 참으로 신기하고 거룩함 그 자체였다. 오후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자유로이 여행하는 시간을 가지고 저녁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주교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후 기념식수의 영광도 안았다. 특별한 기회와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우리는 그 분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세계인들과 하나 된 순례의 여정, 독일…
8월 11일 - 극진한 친절과 배려 속에서 이루어진 오스트리아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참가자들 모두는 오스트리아를 떠나면서 그 동안 수고해주신 신부님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노래를 선물하며 여러 감정의 교차로 눈시울을 붉혔다. 앞으로의 일정을 담당해주실 허광철(베네딕도) 신부님의 안내로 독일로 이동하였으며, 뮌헨 프라이징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곳 방송사의 취재와 봉사자 마르틴을 비롯한 그곳 홈스테이 가정 가족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새로운 일정을 시작하였다.
8월 12일 - 이 날 오후에는 도시 시내 구경하면서 새로운 곳을 하나하나 배워갔고, 저녁에 있을 ‘세계인의 날’행사를 준비하며, 세계인과 함께 나눌 김밥과 잡채를 준비하였다. 세계 각국의 문화를 교류하고, 음식을 나눈 이 날 행사에서의 인기 만점은 바로 우리의 음식이었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한 번 더 내게는 큰 자랑으로 다가 온 날.
8월 13일 - 아침 일찍 모여서 기차를 타고 레겐스부르그로 이동하여 고딕 양식의 성당과 로마 시대의 성문인 포르타 프라이토리아, 12세기의 성당인 쇼텐키르헤 등을 둘러보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슈타이네르도 다리를 지나 도나우 강변에서 점심식사와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오후에는 뮌헨 대광장에 모여 그 곳 추기경님과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등 특별한 체험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곳곳에 살아 숨쉬는 대자연의 신비와 여러 건축물들의 웅장함! 색다른 유럽문화의 매력에 듬뿍 빠져가며….
8월 14일 - 두 번째 맞는 주일!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미사를 봉헌하였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율동찬양 을 봉헌하면서 미사에 봉사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잘 접하지 못하는 것이라 끊임없는 박수를 받았다. 오후 시간에는 퓌센으로 이동해 월트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성을 지을 때 모델로 삼았다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찾았는데 그 규모와 웅장함 그리고 대자연 안에 어우러진 아름다움은 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성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 천국을 오르는 기분이랄까?
8월 15일 - 대축일인 오늘은 인근 주교좌성당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다. 음악의 도시인만큼 그 실력은 대단했으며, 좋은 음악 안에서 뜻 깊은 미사였다. 오후 홈스테이 가정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후 공동체가 모여 저녁기도를 함께 드리고, 본당 강당에 모여서 서로의 문화를 나누고 체험할 수 있는 작은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오스트리아에서 우리를 찾아주신 한인갑(베네딕도) 신부님과 최석환(요셉) 신부님. 우리의 새로운 친구가 되어 함께 일정 시작! ‘오늘 성모님께서 아마 내내 행복해하는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며 하루를 감사, 또 감사.
8월 16일 - 새로운 가족들과 보낸 뮌헨 프라이징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대회를 시작하며, 드디어 독일 쾰른으로 출발! 공동 숙소가 위치한 랑겐필드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짐을 풀고, 개막미사가 열리는 뒤셀도르프 지역으로 이동하여 조별로 본 대회 일정 첫째 날을 시작하였다. 이제부터 진짜 순례의 시작이다! 내 가슴은 무언가 모를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8월 17일 - 아침 해가 떠오르고 우리 교구 외에도 한국 참가자들이 한데 모여 함께 아침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봉헌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아시아인의 날’이 있어 본으로 이동하였는데 비슷한 생김새와 많이 다르지 않는 문화의 공유 속에서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유럽인을 만나다 아시아인들을 접한 기분, 그동안의 긴장이 스르르 무너지는, 아주 편안한 마음이랄까?
8월 18일 - 우리의 날! 바로 한국인의 날이다. 아침 일찍 한국인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오후에는 쾰른 한인성당에서 마련한 컵라면과 단무지로 꿀맛과 같은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다. 삼삼오오 모여서 호호~ 라면을 불어가며 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 곳 주민들과 함께 각 교구에서 준비한 문화공연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율동찬양, 꼭두각시춤, 전통무예, 부채춤, 사물놀이 그리고 우리교구에서 준비한 평화를 구연한 퍼포먼스 등. 젊은이답게 다양하고 멋진 여러 공연이 줄지어 이어졌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크나큰 자부심으로 다가오며,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다. “I am Korean!”
8월 19일 - 그동안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놀라운 규모와 웅장함의 쾰른 대성당! 오전에는 쾰른 대성당 순례의 시간을 가졌는데 가톨릭의 역사와 전통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며 가톨릭 신자인 나의 모습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후시간에는 참가자들 자유로이 투어하면서 각자 원하는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라인강을 거닐며 작은 공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오후의 햇살을 느껴보았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그 하나만으로 너무나 감사드리게 되는 하루! 저녁시간에는 숙소로 돌아와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며 예수님의 수난의 고통에 참여하였다.
8월 20일 - 랑겐필드 지역의 폐막미사를 봉헌한 후 폐막미사를 위해 우리는 쾰른 마리엔 필드로 이동하였다. 세계 각 지역의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의 신앙 안에,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함께 걸었다. 기도, 노래, 율동, 찬양, 환호 등 각기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을 찬미하였으며 저녁기도 때는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저물어 가는 하루를 촛불이 하나 둘 밝히며 우리의 신앙과 사랑도 그렇게 밝아져갔다.
8월 21일 - 광장에서 밤을 지새운 우리는 피곤함 속에서도 기쁨과 설렘 그리고 벅참으로 폐막미사를 봉헌하였다. 큰 소리로 노래하고 기도하며, 각기 다른 모습의 100만 명 이상의 젊은이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우리의 찬미 찬양의 마음을 올렸다. 미사 중에 마음 저 밑으로부터의 솟구쳐오는 감동과 벅참,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감사와 가톨릭 신자 특히 가장 큰 열정으로 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청년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갈 좋은 말씀을 주신 교황님의 말씀처럼 젊은 사도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을 전하는 작은 도구가 되어야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내가 가톨릭의 젊은이라는 것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그리고 내가 대구대교구민이라는 것이…
이번 대회에 참여하며 각기 다른 모습과 문화 속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하나 되어 일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이렇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봉사할 수 있는 젊은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감사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한복을 입고 매콤한 음식을 즐기며,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전통문화와 생활 습관 속에서 살아오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아울러 경상도 특유의 끈끈함으로 가득한 대구대교구 소속의 청년이라는 것이 나를 더욱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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