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성지가 ‘한티’이리라. ‘한티’를 찾은 것은 하늘이 유난히 맑고 푸른 어느 가을날이었다. 대구에 살면서도 어릴 때 한 번 찾아본 후 다시 찾지 못했던 성지, 그런 만큼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떠나는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지금은 도로가 잘 나 있어 차만 있다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 옛날 이곳은 깊고 깊은 산중이었을 것이다.
한티성지를 표시하는 돌기둥이 보이자, 나는 얼른 묵주를 꺼내들어 기도를 하며 성지 이곳저곳을 살폈다. 내가 어릴 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 만큼 개발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논두렁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고 골짜기를 따라 산을 올라갔던 것 같다. 그땐 조그마한 초갓집 마을도 있었는데 지금은 성지 내에 민간인(?)이 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입구에는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제대와 돌의자가 있는 평평한 들이 마련되어 있고, 유달리 높은 십자가 위에는 우리 모두의 고통을 한몸에 지신 예수님이 계셨다. 그곳을 지나 아름다운 숲속 오솔길로 들어서면 숲 곳곳에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을 따라 14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피정의 집 건물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한티는 선조 순교자들의 신앙을 되새기기 위한 묵상의 장소로도 좋겠지만,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유난히 주님께 의지하고 싶을 때 조용히 찾아와도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한티가 위치한 팔공산 지역의 무분별한 난개발로 주변환경이 어지럽기만 하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넘쳐나는 식당과 주변 시설들… 자연은 그대로인 상태로 가장 훌륭한 모두의 재산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서 가져온 소박한 도시락으로 펼쳐진 자연과 더불어, 함께 온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가장 맛있고 행복한 식사가 아닐까.
깊은 산, 그곳에 신앙이 있었다
어릴 때에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덤 앞에서 기도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 유래와 이곳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고 보았다(<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참조).
한티는 원래 ‘큰 재’를 말한다(경상북도 칠곡(漆谷)군 동명(東明)면 득명(得明)동에 위치). 이곳은 대구, 칠곡, 군위 경계의 오지로, 신자들의 최종 피난처였다. 을해박해 때 신도들은 대구 인근의 오지로 피해와서, 화전을 일구며 한데 모여 살았는데, 한티는 이분들이 정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 후에도 수차례 포졸들의 습격을 받고 많은 신도들이 순교했으며, 이곳에 묻혔다.
한티에 신자들이 모여 산 시기는 1815년 을해박해 때, 그리고 1827년 정해박해 이후로 추정하고 있는데, 훨씬 전부터 많은 교우들이 자리잡아 이 지역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수차례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한티에 모인 신자들은 꿋꿋이 견뎌가다가, 1866년 병인년의 대박해로 ‘최후의 날’을 맞는다. 이후 3년 동안 혹독하게 이루어진 병인박해는 이 마을 신자들을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었는데 이들 중에서 이름과 그 행적이 밝혀진 이는 몇 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 날뫼 출신 서태순, 이 공사가 등과 박해를 피해 신나무골로 피신했다가 다시 한티의 옹기골에 숨어들었던 배손의 일가족, 조 가롤로와 부인 최 발바라, 동생 조아기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명 순교자로 그 이름을 남기지 않고 있다.
상상해 보았다. 내가 지금 평화롭게 내딛고 있는 이 산이, 푸른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속이 순교자들의 피와 고통의 함성으로 처참하게 흐트러졌을 그날을. 과연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선조 순교자들처럼 의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저 묵묵히 14처 기도를 올리며 산길을 따라 올라 갈 수밖에 없었다.
산길을 따라 순교자들의 무덤 앞에서 묵상을 하며 14처 기도를 마치니 처음 출발할 때 있었던 제대가 있는 평지로 다시 내려올 수 있었다. 자연이 주는 아늑함과 맑은 기운, 그리고 순교자들의 깊고 넓은 신앙과 더불어 나 자신의 믿음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지속적으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과 당신이 사랑하시는 나 자신에 대한 묵상을 해나갈 것이다. 끝으로 이런 좋은 시간을 마련해 준 <빛>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