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멧돼지와 화물차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한상봉 | 격월간 <공동선> 편집장, 농부

산골에 있는 논밭은 항상 짐승들의 피해로부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얼마 전 한 마을에 사는 이웃이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다 익은 벼를 해치는 멧돼지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느냐고 하소연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요할 때는 군청에서 엽사(獵師)들을 동원해서 멧돼지를 잡기도 한다는데, 그런 탓인지 요즘 산속에서 간간이 총소리가 들리곤 했다. 콩 파종기에 일부러 녹음된 총소리를 틀어놓는 것은 들은 적이 있는데, 수렵이 금지되어 있는 무주군에서 이런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은 아마도 비슷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리라 생각된다. 결국 그 이웃은 더 이상 멧돼지가 곡식을 해치기 전에 서둘러 벼를 베고 탈곡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우리 논도 예외가 아니다. 멧돼지란 녀석이 물을 좋아하는지 물구덩이가 생긴 논엔 어김없이 들어와서 헤집어 놓고 간 흔적이 생긴다. 이삭을 먹는 것 같지도 않다. 논에서 씨름을 하였는지 달리기를 하였는지 벼들이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바닥에 깔려 신음하고 있다. 작년에도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벼들이 바닥에 엉켜 있으면 벼 베기에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올해는 일찌감치 논에서 물을 뺐는데도 바닥이 고르지 않은 곳엔 여전히 물이 고여 있었고, 그런 곳은 멧돼지의 운동장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나흘 동안 벼를 일부 베어내고 논 가운데 물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바닥이 말라야 벼 베기도 좋고 짐승 피해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인근의 예술인마을에서 개촌식(開村式)을 한다기에 마을 사람들을 따라 구경하고 오는 바람에 늦게서야 논일을 보게 되었고, 흙 묻은 장갑을 벗을 때쯤엔 산등성이 위로 어느새 말간 초승달이 떠 올라 있었다.

 

  멧돼지 덕분에 산길을 걸어오는 내내 초승달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멧돼지 막을 방도를 생각해내느라 고심했었다. 어떤 사람은 논 주위에 철망을 치던가, 아님 녹슨 드럼통을 군데군데 놓아두라고 귀띔해 주었다. 멧돼지들이 쇠 냄새를 싫어해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생각만 많이 하다 게으름 탓인지 그냥 넘어가게 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놈들도 제 결대로 사는 것인데, 곡식 조금 상한다고 유난을 떤다는 게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옹졸하기까지 한 것 아닌가 되묻게 된다. 평소에 도량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떠들다가도 정작 내 앞에 손익계산서를 들이대면 금방 얼굴이 쪼그라드는 게 사람의 마음인 모양이다.

 

  이 마을엔 예전에 17가구가 모여 살았는데, 다들 아랫마을 평야로 내려가고, 몇 년 전에야 귀농자들이 한두 가구씩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귀농한 이웃들은 가끔 멧돼지나 고라니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이삼 년 사이에 그놈들이 다 산속 깊이 들어가 버리고, 이곳에 들어온 지 만 이 년이 되는 우린 한번도 그 짐승들을 접하지 못했다. 이를 못내 아쉬워했던 나도 정작 그 짐승들이 나타나자, 오로지 농사의 방해꾼 정도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고 비좁다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나 싶다. 현실보다 아직 낭만이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탓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현실을 또렷이 보면서도 그런 여백을 가져야 산중생활이 우리에게 사람꼴을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사는 게 시행착오 투성이다 보니, 항상 후회하고, 내 마음의 옹졸함을 탓하게 되고, 긁히고 상처 난 만큼 포기하는 것도 많고, 그만큼 마음씀도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내 팔자에 없으려니 생각했던 자동차를 사고나서 마음고생이 극심했다. 화물차를 중고로 어렵사리 구입해서 얼마간 굴리다 보니, 이내 카뷰레터가 고장났다. 수리하면서 보니, 화물칸 바닥이 다 삭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고, 그래서 바닥재를 다시 깔아놓은 차였다. 정비업소 사람들은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차를 잘못 샀구먼. 소금기에 다 삭은 걸 보니 바닷가에서 생선 나르던 차네.”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지만, 다 내가 세심하지 못했던 탓이니 탓할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자동차에 만정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앞 유리 구석에 약간 금이 간 곳이 있었는데 처음엔 그다지 흠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 다음부터 자꾸 남의 차 유리를 보는 버릇이 생겼고, 아무리 고물차라도 앞 유리가 금이 간 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산길을 오르다 자동차에 왕창 흠이 났다. 산길에서 경운기를 만났는데, 경운기가 비켜주고 남은 길폭은 초보 운전자가 지나기엔 무리였다. 오르막이다 보니,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을 수밖에 없었고, 그 세기만큼 문짝부터 화물칸까지 주욱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경운기를 몰던 노인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고, 아주머니가 놀라서 뭐라뭐라 설명을 하시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딱히 누구 책임이랄 수 없었고, 따져 봐야 마음만 더 상할 것 같아, 그냥 집으로 올라왔다. 그 후로도 산길에서 두어 차례 경운기에 옆구리를 긁히고 나서야 이젠 능숙하게 좁은 길도 다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상한 마음이야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냐만서도, 그때마다 속으로 되뇌던 생각은 ‘이 차는 화물차니까 좀 긁히고 깨진다고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거였다.

 

  이젠 후진하다 뒤 범퍼가 떨어져 나가도 그다지 놀라지 않고, 번호판이 찌그러져도 마음이 어수선해지지 않는다. 차폭등이 깨져도 오백 원짜리 전구만 갈아 끼고 다니고, 노래 테이프가 기계에 물려도 고치지 않는다. 어차피 화물차니까, 여름에는 에어컨도 안 되는 차를 창문만 열고 시원하게 달린다. 하나를 놓으니 열 개가 열리는 기분이다. 처음엔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나중엔 그저 무심(無心)하다.

 

  내가 원했든지 원하지 않았든지 이미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긍정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음을 배운다. 그래야 예상하기 어려운 인생길에서 그나마 마음 볶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접어두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없으면 바닥을 견디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바닥마저 기회라 여기고 전혀 다른 중심을 세울 필요가 있다. 내 영혼이 온전하다면, 다른 주변 사물의 시시비비에 휘말리지 말 것. 내게 접속되는 사건들이 가르쳐 주는 메시지를 읽을 것. 그 사물의 진언(眞言)이 나의 의식과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볼 것. 통과비용 없이 우린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아차릴 것. 그러므로 앞으로 더 큰 우여곡절이 생기더라도 당황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배후의 의미를 따져 물을 것. 뭐 이런 것들을 배우고 있다. 그러다 보면, 흠집 많은 타인의 생애를 더 깊은 곳에서 이해하게 되고, 상처 많은 나에게도 조금씩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상 너그러운 것은 자동차였다. 나 같은 초보가 이끄는 대로 다니다 보니 상처받고 찌그러지는 것은 자동차이고 멧돼지였다. 나 같은 사람들이 산중에 자꾸 들어오니 그 동안 밀려서 밀려서 산속으로 도망쳐야 했던 것은 멧돼지였으며 고라니였다. 내 옆구리가 결리는 동안에 그들 존재가 위협받았다. 그런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변해버린 환경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가끔씩 몸을 뒤트는 그네들의 언어를 우리가 조금씩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정희 시인은 ‘어느 날의 창세기’란 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산들이 마을로 무너지지 않는 것은 / 너그러움일 거야 / 나무들이 뿌리를 창궁으로 치켜들지 않는 것은 / 너그러움일 거야 / 생명 있는 것들의 너그러움 / 부드러운 흙가슴의 너그러움 / … / 등뼈를 쓰다듬는 너그러움 / 살기를 풀어내는 너그러움 / 아아 우주의 너·그·러·움·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