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프랑스의 가르멜 수도자들 중의 한 사람인 ‘복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주둔해 있던, 프랑스 중부의 ‘부르쥐’(Bourges) 근교에서 태어난 엘리사벳 까떼즈(Elisabeth Catez)는 그 당시 부유한 가정의 소녀들처럼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녀의 성격은 생기발랄하고 열성적이었으며 매우 감성적이었는데,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때까지 무척 까다로운 아이였던 그녀는 첫 영성체 때 ‘회심’한 후에는 완전히 변모된 인생을 살게 된다.
13세 때 디종의 음악학교에서 ‘1등상’을 수상할 정도로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소질을 발휘했던 그녀는 젊은 시절을 남다르게 ‘피아노 공부’에 몰두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수도 성소를 발견한 그녀는 12세 때부터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그녀가 선택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완강하게 반대하며 좀더 기다릴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한 어머니의 태도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상관없어요. 저는 그 안에서 가르멜 수도자가 될 수 있어요.”라고 기록하였다.
그 당시 프랑스에는 엘리사벳처럼 어린 나이에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갔던 소녀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 불사르는 것 외에는 이 세상 안에서 만족할 만한 것들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영적인 아버지로 생각했던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2)은 “기도는 많이 기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그들이 영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었다.
결국 엘리사벳은 1901년 8월 2일 21세 되던 해 디종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여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하지만 가르멜 수도자로서의 삶은 다섯 해를 넘기지 못하게 된다. 공동체의 옷을 수선하는 소임을 받은 그녀는 수도생활을 하는 동안, 삼위일체 신비와 자신의 이름 안에 있는 모든 소명을 점진적으로 깨닫기 시작하였고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강렬하게 묵상하였다. 그녀는 특히 ‘가르멜 수녀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묵상하였으며, 1902년 8월 7일 <가르멜 수녀, 그 사람은…>이라는 유명한 편지를 작성하였다.
《가르멜 수녀, 그 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성자 예수 그리스도)을 바라보았으며, 세상의 영혼들을 위해 성부 하느님께 희생물로 당신을 제공하시는 그분을 보았던 영혼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의 위대한 시각으로써 심사숙고하는 그 영혼은 자기 영혼의 열정을 이해했고, 그분처럼 자기 자신을 내어주고 싶어했다.
가르멜 산 위에서, 침묵과 고독 안에서,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는 기도 안에서 - 왜냐하면 그 영혼은 모든 것을 통해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 가르멜 수녀는 하늘에서처럼 이미 ‘유일하신 하느님’을 본다.
언젠가 당신의 지복(至福:천국의 행복)을 만들고, 당신의 영광으로부터 그 지복을 만족시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 영혼에게 주어져 있다. 그분은 결코 그 영혼을 떠나지 않고, 그 영혼 안에 머물며, 더 나아가 그것밖에 없고, 둘은 마침내 하나가 된다. 또한 그 영혼은 항상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한존재(하느님) 안으로 항상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침묵으로 굶주려 있다. 그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무한존재와 함께 동일화(同一化)되며, 여러 곳에서 그분을 발견한다. 그 영혼은 모든 것을 통해 그분이 빛나시는 것을 본다.》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수녀는 성 바울로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영성을 나타내는 표현인 ‘영광의 찬미가 되다’라는 말들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으며 영적인 일기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내적인 침묵에로 침잠하였는데,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간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을 만날 수 있는 ‘자기 자신 안에서’ 나아가야 하는 일이었다.
아울러 그녀는 자신이 ‘행복의 비밀’이라고 불렀던 것을 여러 번 상기시켰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인 ‘하느님과의 친밀성’을 찾았으며, 생애의 마지막 몇 달 동안은 영적 피정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구분하였다.
이처럼 가르멜 수도자로서의 삶에 끊임없이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에 중병으로 너무나 처절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랑의 봉헌물처럼 살고자 했다. 특히 그녀는 환자 침대 위에서도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싶은 욕망을 끊임없이 표현하였다. 서거 2년 전인 1904년 11월 21일, 20세의 그녀는 거룩한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이해와 영적 메시지를 모두 요약하는 성삼위께 대해 <오, 나의 하느님, 흠숭하올 삼위일체시여>라는 아름답고 유명한 기도를 작성하였다.
《오 나의 하느님, 제가 흠숭하는 삼위일체시여. 마치 이미 제 영혼이 영원 안에 있었던 것처럼, 흔들림 없고 평화로운 당신 안에 제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저를 완전히 잊게 도와주세요. 그 어떠한 것도 나의 평화를 흔들리게 할 수 없고, 당신으로부터 저를 빠져나가게 할 수도 없습니다. 오 나의 변하지 않는 분이시여, 그런데 매순간은 당신의 심오한 신비 안에로 저를 더 멀리 가져갑니다.》
그녀는, 기도가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너’(하느님과 매우 친밀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의 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였고, 혼인의 이미지와 사랑의 언어를 다시 취하면서 하느님께로 일치하는 신비를 발전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 받으면서 구원되기를 희망했던 그녀는 결국 1906년 26세의 어린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1980년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엘리사벳에 대해 “그녀는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프랑스의 소녀들 중의 하나였습니다.”라고 말했으며, 1985년 11월 25일 그녀를 시복(B럂tification)하였다.
선교사의 마음을 갖고 살았던 복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은 신비적인 묵상가였으며, 삼위일체와 하나되는 생애를 살았던 사도였다. 그리고 그녀가 기록한 영적일기의 내용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영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고,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요약한 사도신경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또한 성호경과 영광송을 바칠 때나 미사를 시작할 때도 삼위일체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올바른 신앙생활(영성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신앙을 끊임없이 고백하고, 이웃들과 서로 일치해야 한다.
특히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인 기도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바치는 것이다. 기도 드릴 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라도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나아가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10월호 사진설명 정정합니다.
p38 사진설명 <데레사가 아기 때 14개월 동안 살았던 유모집>
p39 사진설명 < 데레사가 세례 받을 때 입었던 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