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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SOS 어린이 마을 한국 본부 김진숙 어머니
14년, 한결같은 자식 사랑 이야기


김명숙(사비나)·본지 편집실장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SOS 어린이 마을의 아침. 조용한 바깥 분위기와는 달리 집안으로 들어서자 바삐 움직이는 세탁기 소리, 설거지하는 물소리, 그릇들이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맑은 소리들로 일상의 삶은 노래하듯 명랑하다.

SOS 어린이 마을 한국 본부(본부장:장효원 요셉 신부)가 자리한 대구 마을(대구. 동구 검사동 소재)을 찾은 날은 한창 벚꽃이 피어 꽃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었다. 사뭇 이국적인 정취의 붉은 벽돌집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한 어린이 마을. 언제 보아도 따뜻함을 갖게 하는 건 각 가정마다 자녀들을 위해 한평생 애쓰며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사랑이 가득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스물여섯, 어머니가 되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모(마을에서는 어머니가 되기 전 실습 기간 동안 이모로 불린다.)로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후 스물여덟 되던 해 당당히 어머니가 되어 가정을 이룬 김진숙(헬레나) 씨. 그녀는 고향인 청주에서 어린이 집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우연히 선배를 따라 서울 어린이 마을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대구 마을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어린이 마을의 힘든 ‘어머니’자리를 선택하고야 만 김진숙 씨는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그동안 상처를 가진 아이들의 어머니로 생활한 게 어느덧 14년.”이라며, “생각해보면 그 긴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나, 하는 마음도 들지만 매순간순간 하느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렇게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여러 명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면서 아이들과 함께 울기도 많이 울었고 또 그 만큼 많이 웃으며 지내온 시간들이 마냥 감사할 뿐이라는 김진숙 씨.

 

얼마 전 새로 자신의 품에 안겼다는 일곱 살 꼬맹이부터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그리고 열네 살, 열다섯 살에 이르기까지 모두 8명(6남 2녀)의 아이들과 함께 사랑의 텃밭을 가꾸듯 살아가는 김진숙씨. 날마다 초등학교에서 날아드는 알림장부터 아이들의 건강과 학교 숙제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바치는 매일의 저녁 기도와 주일 미사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손길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여덟 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 곁에는 언제나 잘 웃는 착한 엄마 김진숙 씨가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하나 있단다. 14년 전, 그녀가 처음 어머니가 되어 가정을 맡았을 때의 일.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김진숙 씨. “세상물정 모르던 스물여덟의 나이에 가정을 맡았는데, 제일 큰 아이가 중 3이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오기 전부터 이미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던 아이라 그런지 적응을 못하고 많이 힘들어 하대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는데, 결국은 가출까지 했어요. 그때 우리 집 아이들 중에는 어린 아기도 있었는데, 이모에게 아기를 맡기고 큰 딸을 찾아 갈만 한 곳 이곳저곳 다 헤매 다녔어요. 그리고 마침내 찾았구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 그 딸아이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종종 놀러도 옵니다. 지금 같으면 좀더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설득하고 다독여 주었을 텐데, 그땐 왜 그게 안 되었나 싶어요. 아마 처음인 데다 저도 어려서 그랬겠지요.”라며 김진숙씨는 아직도 그  미안한 마음을 차마 떨칠 수 없다고 말한다.

 

SOS 어린이 마을은 세계 133개국에서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을 맡아 자립할 때까지 보호하고 양육하는 사회복지법인.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구, 서울, 순천 세 곳에 마을이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은 어머니들이 한 가정에 보통 7-8명의 자녀들과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대구 마을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김진숙 씨는 자신의 부모님께는 늘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처음 어린이마을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심하게 반대를 했지만, 지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자신을 지켜봐주고 또 먼길을 달려와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가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는 그녀. 때때로 힘들 때면 예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거나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은퇴 어머니(55세가 되면 은퇴하여 홀로 사신다.)들을 찾아가서 그들 또한 이미 겪었을 고만고만한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조언을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비록 탯줄을 끊어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운명처럼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한 삶을 바침으로써 은퇴하는 날까지 아이들을 위해 살겠다는 김진숙 씨. 그녀는 “순간순간 힘들었던 고비들마다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셨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의 삶은 참으로 큰 축복.”이라고 덧붙여 말한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SOS 어린이 마을의 젊은 엄마 김진숙 헬레나 씨. 자녀들에게 좀더 잘 해주지 못해 늘 마음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지금 그녀 곁에 함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