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별 성사들 안에서의 성령의 활동
나. 견진성사 : 성령을 파견하는 성사
* 영을 중재하는 성사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힘을 지니고”(루카 4,14) 당신의 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시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주시리라고 가르치신다.(루카 11,13 참조) 사도행전에서는 ‘물의 세례’와 안수라는 외적인 표지를 통해 하느님의 영이 임하시는 ‘성령의 세례’를 구별하여 전하고 있다.(8,12-17 참조) 하지만 이 성령의 세례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견진성사와는 다른 것이었다. 고대교회에서 중세초기까지는 아직도 고유한 견진성사가 따로 집전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미 세례성사 안에 성령을 받게 하는 성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견진예식은 9세기가 되어서, 그러니까 유아세례가 일상화된 후에야 나타난다. 이러한 견진예식은 이제 세례예식 안에 표현되고 완성된 구원의 전망을 특별히 표현하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선사된 성령의 은혜로서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드러낸다. 이렇게 견진예식은 세례와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성령의 은혜로서의 성사”이다.
그러므로 견진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드러나게 오시고 파견되신다. 그래서 견진성사에서 집전자 주교는 견진자의 머리 위로 손을 펼치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느님, 여기 있는 이 교우들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죄에서 해방시키셨으니, 이 교우들에게 빠라끌리또 성령을 보내 주소서.”(견진예식, 25항)
*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날인됨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로마 8,14-16)
성령을 통하여 세례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그리스도인은, 이제 그 자녀임을 견진성사 안에서 성령의 은혜와 함께 날인 받는다. 그래서 견진예식에서 주교는 견진자의 이마에 크리스마 성유를 바르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견진예식, 27항) 라고 말한다. 또한 파견강복은 다음의 기도로 이루어진다.
“저희를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당신 자녀로 삼으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저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길이 지켜 주소서.”(견진예식, 33항)
* 성령 안에서 완전하게 교회의 일원이 됨
견진의 유래에 대한 사도행전의 보고는 견진성사를 의미 있게 하는 두 가지의 특별한 동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교회와의 더 밀접한 연결이고, 또 하나는 성령의 힘을 통한 강화(强化)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을 완전한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한다.
“견진성사로 신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여야 할 더 무거운 의무를 진다.”(교회헌장 11항)
이를 위해서 예식을 마감하는 축복의 기도는 이렇게 바쳐진다.
“진리의 성령께서 교회 안에 머무실 것을 약속하신 독생 성자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당신 능력으로 굳세게 신앙을 증거하게 하소서. 사도들 마음에 사랑의 불을 놓으신 성령께서는 저희에게 강복하시고, 여기 함께 모인 저희를 기쁨이 충만한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소서.”(견진예식, 33항)
* 성령을 통하여 믿음이 강화됨
“견진은 신앙을 증거하는 성사이고, 카리스마(은사)를 충만하게 하는 성사이며, 영에 의해서 날인되어 그를 증거하는 이들이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 세상에 파견되도록 하는 성사이며, 믿음을 강화하는 성사이다.”
견진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은총 안에서 성장하고 믿음 안에서 굳세게 된다. 도유와 안수는 견진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굳세어지고, 축복을 받고,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견진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 즉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파견에 더 효과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공적인 믿음의 증인들로 뽑히었고, 교회 안에서 함께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파견된다. 성령을 통하여 견진자에게 믿음과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위한 용기와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견진성사의 효과는 그 안에서 성령께서 성령강림 날에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강화를 위해서, 즉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감하게 고백할 수 있도록 굳세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지향으로 새 견진자들을 위해서 다음의 기도들이 바쳐진다.
“성령의 특은으로 견진성사를 받은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새 견진자들이 신앙 안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터전 삼아 일상생활 안에서 주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소서.”(견진예식, 30항)
“하느님, 저희에게 행하신 업적을 완성하소서. 또한 신자들 마음 안에 성령의 은혜를 보존하시어, 신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증언하며, 사랑과 정성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완수하게 하소서.”(견진예식, 33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느님, 여기 있는 이 교우들에게 지혜와 깨달음의 성령과 의견과 굳셈의 성령과 지식과 효경의 성령을 보내 주시며, 주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견진예식, 25항)
다. 성체성사 : 교회 공동체를 위한 성령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사
* 성령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성사
“성사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성사 중의 성사인 성체성사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 ‘성체성사’는 성사 중의 성사이고, 모든 성사의 어머니이다. 그리스도 친히 당신 몸과 피의 성체성사적인 봉헌을 이루시고, 모든 성체성사예식에 현존하시며, 또 스스로를 봉헌하신다.(전례헌장 47항 참조) 성체성사는 성령의 힘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봉헌이며, 또한 교회의 봉헌이다. 성체성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은 당신의 거룩한 영, 신적인 영을 통하여 계시된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미사통상문 감사기도 제2양식) - 성찬제정말씀 전에 바쳐지는 성령청원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성체성사 안에서의 그의 현존이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성사이며,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힘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의 행위이다. 성령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항상 새롭게 인간에게 오시고, 선사되신다. 성령께서는 성체성사를 생기 있게 하고 그 성사에 생명을 주신다.
* 성령 안에서의 교회적인 친교의 축제
성체성사는 신자 개개인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물론이고 모든 신자들의 일치,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고 실현한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공동체의 성사이다. 왜냐하면 성체성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전례헌장 47항)으로서 교회적인 친교를 이루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 구성원 모두가 함께 성체성사를 드리는 하나의 공동체이고, 그래서 교회는 성체성사적인 친교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성령께서 성사들의 기초로서 활동하시고, 하느님과의 개별적인 만남과 교회적인 친교를 이루시는 것이다. 교회는 효과있는 방법으로 성체성사를 지낼 힘을 성령으로부터 받는다. 교회는 성령의 힘을 통하여 파스카신비를 거행하기 위하여 한데 모이며(전례헌장 6항 참조), 성찬례 안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미사통상문 감사기도 제2양식)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미사통상문 감사기도 제4양식)
* 성령을 통한 사랑의 나눔
성체성사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우리 신자들 안에 사랑의 불이 붙여지고 더욱 커지게 된다. 성체성사는 우선적으로 신적인 사랑의 축제로서, 그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그들의 사랑을 서로 나누신다. 성체성사는 또한 인간적인 사랑의 축제로서, 그 안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인간에게 선사하시고, 인간도 그들의 사랑을 하느님께 전해드리게 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니,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위격을 지닌 사랑이시다. 이렇게 성체성사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의 사랑 역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 전달된다. 동방교회 전통에서 유래하는 미사통상문 감사기도 제4양식은 성체성사를 특별히 성령과의 관련 하에서 사랑의 축제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제는 저희가 저희를 위하여 살지 않고 저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을 위하여 살도록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첫 열매로 보내셨나이다. 성령께서는 성자의 구원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나이다.”
라. 고해성사 : 성령 안에서의 용서의 성사
* 성령을 통한 죄의 용서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거나, 자신의 삶 혹은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파괴하는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다. 죄는 하느님과의 화해를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화해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베풀어진다. 일찍이 교부들은 죄의 용서를 성령의 은총으로 보았고, 트리엔트 공의회는 보속 역시 성령의 은총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성령과 죄의 용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령은 심지어 ‘죄의 용서’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다.
화해의 축제인 참회의 성사는 성령을 통한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룬다.
“참회의 성사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을 하느님과 새로이 결합시키는 것이니, 인간을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적인 몸에,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교회적인 몸에 신성하게 일치시킨다.” 따라서 이 화해의 성사 안에서 죄의 용서가 베풀어지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서이다. 성령께서 고해성사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은 고해성사의 예식문 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사죄경에 따르면 죄의 용서를 위해 성령께서 파견되신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 당신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시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교회의 직무 수행으로 몸소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고해성사예식, 45항)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2,10) 성령을 모독하는 죄인 안에서 성령께서는 더 이상 활동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화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죄의 용서를 위하여 선사되신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 저항하는 것은 바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저항하는 것이다.
* 성령 안에서의 교회의 사죄권
고해성사는 죄를 사하는 권한을 가진 교회의 성사이다. 이 권한은 또한 죄사함을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성령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따라서 교회는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분명히 한대로, 성령께서 주님으로부터 교회에 파견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죄인의 화해도 그리고 교회 자체에 대한 죄인의 화해도 모두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주교서품기도에서도 나타난다.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대로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용서하는 대사제의 권한을 갖게 하소서.”(주교서품예식, 47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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